“협상 연장”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총살 청천벽력

  • 입력 2007년 7월 31일 03시 42분


모두가 곤한 잠에 빠진 31일 오전 1시 39분.

전날(30일) 저녁 아프가니스탄 정부 관계자가 “협상 시한이 이틀 연장됐다”고 밝히면서 마음 졸이던 순간도 지난, 조용한 시각이었다.

갑자기 정적을 깨고 AFP통신이 ‘긴급’을 타전했다. 그 순간 누구도 바라지도, 예상하지도 못했던 소식이 흘러나왔다. “탈레반이 한국인 인질을 또 한 명 총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전날인 30일부터 긴장은 한껏 고조돼 있었다. 이날 오후 4시 30분은 탈레반 납치세력이 29일 밤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 수감자 석방에 합의하지 않으면 인질을 죽이겠다”며 새롭게 제시했던 협상 마감 시한이었다.

탈레반의 경고대로 새로운 희생자가 나오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협상이 삐걱거린다는 소식이 오전부터 나온 터라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곧이어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측에 모두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소식, 협상이 완전히 결렬됐으므로 인질을 살해하기 시작하겠다는 탈레반 측의 위협이 잇따라 전해졌다.

오후 7시 53분, 탈레반이 협상 시한을 다시 오후 8시 30분으로 연장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타전됐다. 하지만 오후 10시가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었다. 오후 10시 34분 “탈레반이 협상 시한을 이틀 뒤(8월 1일)로 다시 연장했다”는 AP통신의 보도가 나왔다. 피랍자 가족과 정부 관계자들은 잠시나마 한숨을 돌렸지만, 다가올 또 다른 비극을 예감하지는 못했다.

○…이날 긴장이 가장 고조된 시점은 오후 6시 5분경. 아프간 현지 통신사 아프간이슬라믹프레스(AIP)가 탈레반 사령관의 ‘협상 실패’ 선언을 긴급 타전했다. 그는 AIP와의 통화에서 “아프간 정부와의 협상은 완전히 실패했으며 탈레반은 인질들을 살해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예고된 파국이었던가. 그의 말은 전날인 29일 밤 탈레반 측 대변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가 내뱉은 위협과 같은 내용이었다.

아마디는 AFP통신에 “아프간 정부가 내일 오후 4시 30분(한국 시간)까지 수감자 석방에 합의하지 않으면 인질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그는 “(살해하는 인질 수는) 1명이 될 수도, 2명이 될 수도, 4명이 될 수도 있고 인질 모두가 될 수도 있다”고까지 협박했다.

○…당초 제시됐던 협상 시한인 오후 4시 반부터 한동안은 아무런 소식이 없어 오히려 가족과 정부 관계자들의 속을 태웠다.

오후 5시경 “정부 협상단과 탈레반 양쪽이 모두 입을 닫았다”는 AFP통신의 보도가 전부였다. AFP는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 협상단 측이 모두 전화를 꺼놓아 연락이 안 된다”고 보도했다.

결국 협상이 완전 결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한층 커졌다. 이에 앞서 오후 1시 40분경 연합뉴스를 통해 전해진 ‘협상단 일부 철수’ 소식이 오버랩됐다. 연합뉴스는 아프간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협상단 3, 4명이 협상에 진전이 없어 29일 밤 카불로 돌아왔다”고 전했다.

절망이 점점 커지던 도중 ‘협상 시한 8시 30분으로 4시간 연장’에 이어 ‘이틀 뒤로 연장’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날 하루에만 두 차례나 협상 시한이 연장되면서 현지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시한이 연장된 것으로 알려진 뒤에도 협상은 여전히 원점을 맴돌 뿐 진전을 보지 못했다.

협상단 일원인 가즈니 주 출신 국회의원 마무드 가일라니는 “정부 방침은 (탈레반) 죄수를 석방하지 않는다는 것인 반면 탈레반은 여전히 이를 요구하고 있다”며 “협상에 진전이 없고 아마도 성공하지 못할 것 같다”고 협상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29일 밤부터 30일 밤까지 탈레반이 내뱉은 발언은 이전에 비해 위협의 수위가 한층 높아졌다. 특히 연합뉴스가 30일 현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탈레반 측은 한동안 거론하지 않던 ‘종교’ 얘기를 다시 꺼내며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아마디는 이 소식통과의 통화에서 “이들 한국인은 기독교인이고 아프간인에게 기독교를 전파해 개종시키려고 온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 모든 정황은 날짜가 바뀌면서 다가올 두 번째 비극의 전조를 서서히 나타내고 있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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