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여자 인질 10명과 남자 인질 2명 등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무장세력에 억류돼 있던 피랍자 12명이 석방됐다는 소식을 접한 이들의 가족들은 전원 석방 합의 발표 이후에도 남아 있던 불안감을 털어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피랍자 가족들도 함께 기뻐하며 남은 피랍자들의 추가 석방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이들은 탈레반 무장세력에 살해된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씨 가족들을 의식한 듯 애써 기쁨을 안으로 억눌렀다.
이날 석방된 이지영(36) 씨는 먼저 풀려난 김경자, 김지나 씨에게 “이 나라 말을 할 줄 아는 내가 남겠다”며 석방 기회를 양보했던 주인공이다. 2년 전 아프간에 처음 갔다 온 뒤 장기 봉사를 결심하고 지난해 12월 아프간으로 떠나 현지에서 교육, 의료봉사 활동을 해 왔다.
이 씨의 오빠 이종환 씨는 “김경자 씨 등을 통해 쪽지로 가족에게 전한 ‘걱정하지 말라’던 말처럼 건강히 살아 돌아오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고세훈(27) 씨는 충남 천안 남서울대를 휴학한 상태.
출국 직전 어머니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하면서 “세상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엄마한테 더 잘해 드려야지”라는 말을 남겨 가족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고 씨의 누나는 “하루빨리 인천공항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봉사단원 중 가장 나이가 많고 2년 전 갑상샘암 수술을 받은 유경식(55) 씨의 부인 성인숙 씨는 “건강하다는 소식에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이정란(33·간호사) 씨는 경기 성남시의 개인병원에서 일하면서 3년 전부터 매년 휴가를 내고 해외 의료봉사에 나섰다.
이 씨는 피랍사건 발생 당시 일행과 떨어져 혼자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며칠 뒤 납치됐다는 사실이 확인돼 가족이 더욱 애를 태웠다.
이날 오후 제주 서귀포시 국화재배 농장에서 일하다 석방 소식을 알게 된 이 씨의 어머니 김형임 씨는 “딸이 잡혀 있는 동안 일손이 잡히지 않았고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서명화(29), 경석(27·남) 씨 남매가 납치됐다가 명화 씨만 먼저 풀려난 데 대해 아버지 서정배 씨는 “잃어버린 자식을 되찾은 느낌”이라며 “하나만 먼저 풀려났는데 둘 다 모두 와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간호사 출신인 임현주(32) 씨는 3년 전에 아프간 봉사활동을 위해 떠나 장기간 체류해 왔다. e메일 ID가 ‘아프간러브’일 정도로 아프간에 대한 사랑이 절절하고 미국 CBS방송을 통해 피랍자 가운데 처음으로 육성 공개돼 주목을 받았다.
경기 평택시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버지 임석지 씨는 “국민 여러분께 감사한다”면서 “공항에 아이들과 함께 가서 현주를 맞이하겠다”고 말했다.
이들 12명의 석방 소식이 전해졌지만 아프간에서 탈레반에 살해된 심성민 씨 가족의 슬픔은 여전했다.
심 씨의 아버지 심진표(61·경남도의원) 씨는 이날 본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피랍자 19명이 무사히 귀국하고 나면 사건의 전말은 물론 이번 사태에서 정부와 교회가 어떤 책임이 있는지를 따질 것”이라고 말했다.
성남=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고성=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