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피랍사건이 남긴 국내 언론보도 숙제

  • 입력 2007년 9월 4일 03시 05분


피랍자 가족들 외교부에 꽃다발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됐다 석방된 유정화 씨의 어머니 곽옥강 씨(왼쪽) 등 피랍자 21명의 가족들이 3일 외교통상부를 방문했다. 이들은 송민순 외교부 장관에게 처음 납치된 인질 수를 뜻하는 23송이의 장미 꽃다발과 감사의 편지를 전달했다. 연합뉴스
피랍자 가족들 외교부에 꽃다발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됐다 석방된 유정화 씨의 어머니 곽옥강 씨(왼쪽) 등 피랍자 21명의 가족들이 3일 외교통상부를 방문했다. 이들은 송민순 외교부 장관에게 처음 납치된 인질 수를 뜻하는 23송이의 장미 꽃다발과 감사의 편지를 전달했다.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태는 한국 언론에 적지 않은 숙제를 남겼다.

한국인 23명이 한꺼번에 납치된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본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은 현장에 접근하지 못한 채 외신에 상당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외신을 사실 여부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그대로 인용 보도하거나 때론 탈레반 무장세력의 언론 플레이에 당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번 피랍 사태와 관련해 국내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되짚어 본다.

○ 오보를 낳은 구조적 취재 한계



정부는 7월 19일 한국인 피랍 이후 아프간 정부에 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중지를 요청한 데 이어 8월 1일에는 아프간을 아예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했다. 기자들의 현장 접근이 봉쇄됨에 따라 국내 언론은 이번 사태 내내 외신 보도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 놓였다.

특히 사태 초반 긴박한 현지 상황 속에서 엇갈린 각종 외신 보도는 시차에 따른 국내 언론의 마감시간과 맞물리면서 오보로 이어졌다. 한국인 인질 8명 석방설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본보 등 일부 언론사는 나름대로 검증된 현지 통신원을 고용하거나 현지 소식통을 통해 간접 취재에 나섰다. 하지만 이들도 탈레반 내부의 동향을 100% 정확하게 포착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물론 한국 기자가 아프간에 들어간다고 해도 막상 취재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 프로파간다와 언론 보도

이번 사태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내전 상황 속에서 벌어졌다. 이 때문에 언론도 이들의 프로파간다(선전)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의 부도덕성과 잔인함을 부각시켰고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의 무능을 선전하려고 애썼다. 사태 초기 아프간 정부 측의 대외 과시용 ‘협상 시한 연장설’과 대(對)탈레반 위협용 ‘인질 구출 작전설’ 오보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탈레반 측은 국내외 언론의 인질 인터뷰 경쟁을 부추겼다. 미국 CBS방송이 인질의 육성을 첫 공개한 이후 국내외 언론사를 통해 인질들의 목소리가 줄줄이 소개됐다. 하지만 피랍자들은 풀려난 뒤 “탈레반이 시키는 대로 말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탈레반의 심리전에 속절없이 당한 셈이다.

○ 앞으로 언론은

이번 사태는 우리 언론에 적지 않은 경험과 교훈의 기회를 제공했다.

우선 자국인 인질 사태에 대한 외국 언론의 보도 태도를 참고할 만하다. 이번에 독일인도 탈레반에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졌지만 독일 언론은 일부 확인된 사실 이외엔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이런 신중한 보도와 사실 확인을 위한 노력은 속보 경쟁에 휘말린 한국 언론이 곱씹어 볼 대목이다.

테러범의 프로파간다에 말리지 않기 위한 보도 준칙 마련도 필요하다. AP통신, BBC방송 등은 ‘인질에게 접근하는 대가를 납치범에게 지불해서는 안 된다’ ‘납치범의 도구로 활용되거나 인질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보도는 자제한다’는 내부 지침을 갖고 있다. 이런 기준은 이제 남의 나라 얘기일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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