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자-김지나씨 회견 “아프간으로 떠나기 전 유서 작성”

  • 동아일보
  • 입력 2007년 9월 5일 03시 00분



아프가니스탄 피랍자 21명 가운데 지난달 13일 먼저 풀려난 김경자(37·여), 김지나(32·여) 씨가 4일 경기 안양시 샘안양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피랍 과정에서 숨겨진 이야기들을 털어놨다.

특히 김경자 씨는 탈레반이 해외 언론에 보낼 영상을 찍기 위해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캠코더 앞에 앉혔던 기억을 떠올리며 카메라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이날 회견에서 “아프간으로 떠나기 전에 유서를 썼다”고 밝혔다.

김지나 씨는 “(유서를 쓴 것은) 의무적인 것이 아니고 단지 의미 있는 삶을 살자는 차원이었다”며 “부모님께 감사하는 내용을 적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에서 떠난 봉사단원 가운데 절반가량이 교회에 마련된 ‘유서 작성 프로그램’에 따라 유서를 썼다”고 덧붙였다. 김경자 씨도 “기도문 제목을 적은 유서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억류 중에도 탈레반의 감시를 피해 ‘비밀 기도’를 했다고 소개했다.

2, 3명이 망을 보고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것처럼 기도하며 석방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4일 오후 경기 안양시 샘안양병원에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피랍자 가운데 제일 먼저 풀려난 김지나(오른쪽), 김경자 씨가 기자회견을 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4일 오후 경기 안양시 샘안양병원에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피랍자 가운데 제일 먼저 풀려난 김지나(오른쪽), 김경자 씨가 기자회견을 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김지나 씨는 이 밖에 B5용지 크기의 개인 수첩에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쓰는 등 일지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한편 다른 피랍자 이지영(36·여) 씨가 석방의 기회를 양보한 것과 관련해 김경자 씨는 “그저 2명, 1명으로 나누는 줄 알았지 진짜 석방될 줄 몰랐다”며 “내가 혼자 남는 것을 불안해하자 이 씨가 대신 남겠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두 김 씨는 다른 피랍자들보다 보름 이상 빨리 석방됐지만 여전히 공포와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김경자 씨는 “석방 2일 뒤 현지에서 (주민들이) 불꽃놀이를 했는데 총소리인 줄 알고 크게 놀랐다”면서 “지금 회견장에 있는 카메라도 무섭다”고 털어놨다.

두 사람은 또 함께 돌아오지 못한 고 배형규(42) 목사와 심성민(29) 씨에 대해 “그저 죄송할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함께 억류됐던 심 씨에 대해 김지나 씨는 “막내였지만 밤에 이동할 때마다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을 겁니다’라면서 누나들을 안심시켰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한편 이날 고 심성민 씨의 아버지 심진표(61·경남도의원) 씨는 “오늘 교회 측으로부터 유서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이제야 유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 교회가 원망스럽지만 8일 배형규 목사 장례식 때 서울에 가서 유서를 찾아와 내용을 꼭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양=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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