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차림의 고교 3년생 쓰카야마 고다이(津嘉山擴大·18) 군이 단상에 올라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다. “두꺼운 교과서 속의 단 한 줄이지만 그 속에는 잃어버린 수많은 존귀한 목숨이 담겨 있습니다. 두 번 다시 전쟁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오키나와 현민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일본 최남단에 위치한 섬 오키나와(沖繩)에선 지난달 29일 분노한 주민의 함성이 들끓었다.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에 대한 항의였다.
이날 기노완(宜野灣) 시에서 열린 역사 왜곡 규탄 현민 궐기대회에는 무려 11만여 명이 참석했다.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 이후 최대 규모다.
참석자 사이에는 당파의 구분도 없었다. 현 의회와 학부모연합회 등 22개 단체가 주최한 이 행사엔 자민당계인 나카이마 히로카즈(仲井眞弘多)지사와 자민당과 민주당 사회당을 망라한 국회의원들, 그 밖의 유력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3월 문부과학성이 내년부터 사용할 고교 교과서의 ‘집단 자결’ 부분에서 ‘일본군에 의한 명령’ ‘강제’ 등의 표현을 “오키나와 전투의 실태를 오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삭제하거나 수정하도록 한 것이다.
당시 생존자들은 주민들이 동굴 등의 은신처에서 일본군으로부터 받은 수류탄을 터뜨려 자결하거나 가족끼리 목 졸라 살해했으며 일본군이 자살을 강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은 그간 영화나 드라마로 널리 알려졌고 교과서에도 나오는 ‘상식’이었다.
그러나 문부과학성은 집단 자결에 일본군의 명령과 강요가 있었다고 기술한 5개 출판사, 7종의 교과서에 대해 “최근 일본군의 명령과 강요를 부정 의문시하는 학설과 서적이 나오고 있다”는 설명을 첨부한 삭제 의견을 내놓았다.
오키나와 현은 이에 강력히 반발해 현 의회를 비롯해 41개 기초자치단체가 검정 의견의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잇달아 채택했다.
지난달 25일에는 도쿄에서 교과서 집필자 25명이 모여 기술 수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문부과학성은 “심의회 전문가들의 판단이므로 행정관청이 개입할 수 없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앞서 1982년 오키나와 전투에 관한 교과서 검정에서 ‘일본군에 의한 주민 살해’의 기술이 삭제됐으나 오키나와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이듬해 검정에서 부활된 바 있다.
이번 궐기대회에서 주최 측은 “집단 자결이 일본군의 관여 없이는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로 이를 삭제 수정하는 것은 수많은 체험자의 증언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것”이라며 “국가에 대해 검정 의견의 철회와 기술 내용의 복원을 요구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주최 측은 이달 초 결의문을 일본 정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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