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냐 친러냐 갈림길…우크라이나 총선 현장을 가다

  • 입력 2007년 10월 1일 03시 00분


‘오렌지혁명’의 본거지인 우크라이나의 앞날을 가름할 총선이 30일 실시됐다. 총선 결과는 1일 오후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결과가 나온 후에도 우크라이나에서는 친(親)서방이냐, 친(親)러시아냐를 놓고 내연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동서 간의 고질적인 지역 갈등도 한층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는 어디로?=총선 전날인 지난달 29일 오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시내의 독립광장. 여기저기에서 상대방을 헐뜯는 구호가 난무했다.

“지역당에 표를 주면 친러시아 종속주의자, ‘우리우크라이나당’에 투표하면 친미주의자.”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를 지지하는 ‘티모셴코 블록’ 운동원들이 이런 구호를 외치며 한 표를 호소했다.

선거운동원들의 열기와는 달리 투표 당일인 30일 만난 시민들은 투표 후 후유증을 걱정했다. 글레브나 나스타샤(43·여) 씨는 “이번 선거에서 누구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현지 선거 전문가들은 450석을 놓고 오렌지혁명 세력과 반대 세력이 박빙의 승부를 벌일 것으로 내다봤다. 정치평론가 빅토르 네보젠코 씨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총리가 이끄는 지역당의 승리가 유력하지만 오렌지혁명 세력인 우리우크라이나당의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과 티모셴코 전 총리가 선거 후 민주세력 연정을 선언해 결과를 속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으로 친서방 노선을 걷고 있던 오렌지혁명 세력이 226석 이상을 얻어 정국 주도권을 재탈환하면 유럽연합(EU) 가입 등 탈러시아 행보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제1당으로 부상한 지역당이 오렌지혁명 세력을 다시 꺾으면 친러파가 득세해 정국 혼란이 2009년 대선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렌지혁명’은 2004년 12월 당시 오렌지 색 깃발을 상징으로 내세웠던 유셴코 야당 후보가 여당의 부정선거를 뒤집고 당선되면서 붙은 이름이다.

▽동서 지역갈등 심화=이번 총선에서 어느 당이 승리하더라도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지역 갈등의 상처는 쉽게 아물기 어렵다는 게 현지의 분석이다. “아예 나라를 동서로 쪼개는 것이 낫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우크라이나 시장에 진출한 LG전자는 올해 마케팅을 위해 이 나라 동부 지역 축구팀에 후원금 300만 달러를 전달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서부 지역에서 “어느 한 지역을 편들면 장사를 그만둬야 할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지역 갈등은 소련이 붕괴된 이후 권력 분할 과정의 산물이다. 유셴코 대통령은 2004년 오렌지혁명에서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서쪽 지방을 기반으로 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야누코비치 총리는 러시아와 가깝고 산업이 발달한 동부 지역에서 지지 세력을 모아 오렌지혁명 세력을 누르고 제1당 총수가 됐다.

우크라이나 정치평론가 유리 야기멘코 씨는 “깊어가는 동서 갈등은 우크라이나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말했다.

키예프=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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