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사업을 하는 A(52) 씨는 올해 7월 국내 한 부동산개발업체를 통해 베트남 남부의 휴양지인 붕따우 시 해변가 땅(1000m²)을 5억 원에 매입했다. 하지만 최근 베트남 현지를 방문한 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파트 용지라는 업체의 말과 달리 매입한 땅이 염전(鹽田)이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A 씨는 투자금 5억 원도 날릴 위기에 처했다. 베트남 토지법과 주택법 등에 따르면 외국인은 투자 허가를 받아 땅을 ‘임차’할 수 있을 뿐 ‘소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뒤늦게 사실을 알고 투자금을 회수하려고 나섰지만 알선 업체는 종적을 감춘 뒤였다. 최근 해외 부동산 투자 붐을 타고 베트남 부동산에 투자하는 국내 기업과 개인이 늘고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 체제인 베트남에 대한 정보 부족 등으로 투자에 실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 베트남 부동산 투자 열풍
베트남은 1986년 정부가 개혁·개방(도이모이) 정책을 발표한 이후 외국인 직접 투자가 급증하면서 부동산 수요가 크게 늘었다. 특히 베트남 최대 도시인 호찌민 시 등 외국인 투자가가 많이 몰리는 대도시 중심가에서는 사무실과 고급 아파트의 공급이 달려 임대료가 크게 올랐다. 호찌민 시 중심가의 사무실 임대료는 2005년 m²당 월 29달러 수준에서 현재 월 45∼50달러로 최고 72% 올랐다.
이 과정에서 호찌민 시나 하노이 시 중심가에 오피스 빌딩과 고급 아파트를 지어 큰돈을 번 외국 업체가 속속 등장했다. 한국 업체와 개인들도 대박을 쫓아 베트남으로 몰리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국내의 기업과 개인이 부동산 관련 사업을 하기 위해 베트남에 투자한 금액은 올 상반기(1∼6월)에 3384만4000달러(약 311억 원)로 지난해 상반기 138만1000달러(약 13억 원)에 비해 2351% 폭증했다. 지난해 전체로는 661만4000달러(약 61억 원)로 2005년 78만 달러(약 7억 원)에 비해 748% 급증했다.
○ 베트남 부동산, 곳곳 지뢰밭
국내 건설업체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베트남에 진출하기 시작해 현재는 20여 개 회사가 아파트 건립 등 각종 부동산 개발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의 첫 단추인 ‘투자 허가’를 당국으로부터 받는 데 짧아도 2, 3년씩 걸리는 데다 투자 허가를 받더라도 토지 보상이 지연되는 사례가 많아 상당수 기업이 애를 먹고 있다.
1997년부터 하노이 시 서쪽에서 208만 m²(약 63만 평) 규모의 신도시 개발을 추진해 온 B사 등 5개 건설업체는 베트남 당국으로부터 투자 허가를 받는 데 10년이 걸렸다. 호찌민 시에서 아파트 건설을 추진 중인 C사는 3년 전 투자 허가를 받았지만 토지 보상에 발목이 잡혀 언제 착공할지 미지수다.
이성훈 KOTRA 호찌민 무역관장은 “베트남 정부 안에는 외국인들이 부동산을 개발해 큰 투자 차익을 빼간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며 “그래서인지 대도시 중심가에서 외국인이 부동산 투자 허가를 받기가 어려운 편”이라고 말했다. 수백 개의 국내 중소규모 시행사가 베트남에 진출했지만 실제 땅을 확보해 사업을 추진한 회사는 극소수라는 게 현지 부동산 관계자의 전언이다.
호찌민 시에 있는 나이스투자자문사의 이청학 사장은 “시행사가 사업 초기에 투입하는 자금이 비교적 적은 한국과 달리 베트남에서는 많게는 수백억 원대에 달하는 50년치 토지임차료를 정부에 일시불로 내야만 투자 허가를 받을 수 있다”며 “자금력이 충분한 대형 건설업체가 아니면 베트남에서 사업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 개인 투자자 피해도 늘어
베트남법상 외국인은 땅이든 주택이든 부동산을 일절 소유할 수 없다. 호찌민 시 투자계획국 루탄퐁 부국장은 “외국인은 6개월 이상의 비자를 받고 3개월 이상 베트남에서 근무한 사람에 한해 아파트를 임차할 수 있는 권리만 준다”고 말했다.
외국인에 대한 부동산 규제가 엄격한데도 국내의 투자자들은 베트남 사람의 명의를 빌리는 등의 불법을 동원해 부동산을 취득하고 있다. 일부 투자자는 수익을 얻기도 하지만 피해를 보는 사례도 늘고 있다.
D(당시 68세) 씨는 2002년 호찌민 시내에 있는 3층짜리 단독주택을 10만 달러(약 9200만 원)에 샀다. 베트남법상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이 금지돼 있었기 때문에 베트남에서 동거하던 현지처의 명의를 빌린 것.
하지만 두 사람 간 신뢰 관계는 집값이 폭등하면서 비극으로 끝이 났다. 현지처가 자기 명의로 된 D 씨의 집을 가로채기 위해 지난해 1월 D 씨를 살해했다.
E사는 올해 상반기 베트남 동남부의 냐짱 시 해변가에 13만2000m²(약 4만 평) 규모의 리조트를 개발할 수 있는 투자 허가를 받았다며 국내에서 투자자를 모집했다. 하지만 투자 허가를 받지 않은 사실이 몇 달 뒤 탄로나 투자금 환불 사태를 빚었다.
골든브릿지금융그룹 문구상 베트남법인장은 “베트남 부동산 시장은 ‘기회의 땅’인 동시에 잘못 빠지면 나오기 힘든 ‘늪’의 양면성을 가진 만큼 철저한 사전 준비와 신중한 투자 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찌민=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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