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 “바이오자원 해적질 멈춰라”

  • 입력 2007년 10월 17일 0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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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이스턴케이프 지역에선 펠라르고늄이라는 풀의 채취를 놓고 외국 기업과 현지인들 간에 공방이 치열하다.

주민들이 수백 년간 두통 불면증 등의 민간요법에 사용해 온 이 풀에 대해 독일의 한 제약회사가 남아공 정부의 특허를 얻어 대량 채취에 나선 것이 발단이었다.

현지인들은 이 회사가 펠라르고늄 추출 물질로 만든 약의 효능이 민간요법과 별 차이가 없다며 관련 특허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지 과학자들도 “바이오(bio·생물학적, 생명공학적) 해적질을 중단하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풀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치료 성분도 있다는 이 회사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현지인과 다른 회사들은 펠라르고늄을 채취하지 못할 수 있다. 독일 기업이 남아공의 풀을 이용해 수십억 달러의 이윤을 챙기는 상황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유엔은 다음 주 캐나다에서 실무그룹회의를 열고 제3세계 국가에서 바이오자원(생물 종의 특성을 이용하는 자원) 확보 및 특허권 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분쟁에 관해 논의한다.

○ 바이오자원 확보 전쟁

세계적 제약업체인 머크사는 남아공 킬리만자로의 흙에 서식하는 박테리아, 멕시코 토양의 균류, 나미비아의 미생물 등 모두 9개 국가의 희귀 바이오자원에 대한 특허를 갖고 있다. 이들은 호르몬제나 각종 치료제의 원료로 쓰인다.

스위스 로슈는 조류인플루엔자(AI) 치료제 타미플루의 원료인 중국 열매 ‘스타아니스’에 관한 특허로 거액을 벌어들인다. 제약회사 엘리릴리는 마다가스카르의 열대우림 식물인 ‘로지페리윙클’을 이용한 항암치료제로 연간 1억 달러의 수익을 얻고 있다.

화이자나 브리스톨마이어스 등 대다수 글로벌 제약회사 및 바이오 업체들도 비슷하다. 피부병 치료와 혈액 정화, 살균 등에 효과가 있는 인도의 넴 나무의 경우 북미지역 대기업들이 성분 및 이를 활용한 치료법에 대해 모두 30여 개 특허를 갖고 있다.

생물 및 유전자자원 확보 전쟁이 본격화한 것은 1980년 미 대법원이 이른바 ‘차크라바르티 사건’ 판결에서 동식물과 미생물은 물론 인간 유전자에 대해서까지 특허를 인정하면서부터다. 매년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붓는 제약회사의 경쟁으로 ‘유전자 사냥꾼(gene hunter)’들까지 생겨났다.

○ 반격 나선 자원 보유국

태국 정부는 지난달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1년간의 전국 바이오자원 보유 현황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인도와 아프리카, 페루에서도 생물학자들이 바이오자원 유출을 막기 위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6월 허락 없이 아마존 밀림에서 생물을 채취한 네덜란드 과학자에게 징역 16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남아공의 한 부족민은 “제약회사가 우리 자원과 전통지식을 도둑처럼 빼가서 떼돈을 벌 때 우리는 식물 채취 노동의 대가로 몇 푼만 손에 쥔다”고 말했다. 바이오자원 특허권에 반대하는 단체들은 “원시부족들이 피와 머리카락, 침 등까지 DNA 채취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자원기구(WRI)에 따르면 25만 종의 바이오자원 중 50% 이상은 제3세계 국가에 분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영국 왕립 국제문제연구소인 ‘채텀하우스’는 최근 ‘유전자자원의 특허 문제’ 보고서에서 “혜택이 편중된 바이오자원 특허 경쟁이나 이를 막으려는 국가들의 무조건적인 과학적 연구 제한은 양쪽 모두에 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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