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든 ‘적과의 동침’ 길

  • 동아일보
  • 입력 2007년 10월 20일 03시 00분



■ 부토 귀국행렬 폭탄테러 참극

反무샤라프 이슬람무장단체 공격 ‘예고편’

지지율도 추락… 권력분점 순탄치 않을듯


“베나지르 부토의 화려한 컴백은 대학살의 신호로 기록하게 됐다.”

19일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에 대해 외신들은 이렇게 전했다. 이날 테러는 부토 전 총리를 환영하는 열기로 뜨겁던 카라치 시내를 순식간에 비명과 신음으로 가득 찬 아수라장으로 바꿔 버렸다.

AP통신 사진기자 방가시 씨는 “큰 폭발음과 함께 사람들이 허공으로 튕겨 올랐다. 사지가 찢긴 시체가 곳곳에 나뒹굴었고 손발이 잘린 사람들은 살려 달라고 외쳤다”고 전했다. 현지 경찰은 폭탄 조끼를 입은 범인이 군중 사이로 수류탄을 던진 뒤 곧바로 자살 테러를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부토 전 총리는 사건 후 기자회견을 열고 “우호적인 한 국가로부터 자살테러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다”면서 “자살 테러단 중 하나는 친탈레반 세력이며 또 하나는 알 카에다와 연계된 세력”이라고 밝혔다. 그는 “나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이번 테러는 앞으로 있을 대혼란의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슬람 무장단체들의 공격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친미 성향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극렬히 대항해 온 무장단체들은 올해 들어 한층 결집된 세력을 과시하며 정부군과 끊임없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역시 친미 성향에 ‘반테러’를 외치는 부토 전 총리까지 권력 분점 협상을 통해 무샤라프 대통령과의 연대를 추진하고 있어 무장단체들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무장단체와의 대립은 제쳐두더라도 파키스탄 정국 자체도 앞날이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권력 분점을 통해 각각 ‘5년 재집권’과 ‘3번째 총리’를 노리는 무샤라프 대통령과 부토 전 총리의 야심이 순조롭게 이뤄질 것인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일단은 대법원의 판결에 이목이 집중된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6일 대선에서 압승했지만 대법원은 그의 후보 자격을 문제 삼으며 그의 재선이 적법한지를 따지고 있다. 대법원은 또 무샤라프 대통령이 부토 전 총리에게 약속한 사면을 허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최근 두 사람의 지지율이 하락한 사실도 ‘전략적 제휴’의 파괴력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올해 초 대법원장을 해고하려다 퇴진 운동에 직면하는 등 지지율만 잃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9일 한 여론 조사 결과를 인용해 “권력 분점 거래로 부토 전 총리의 지지율은 63%에서 21%로 추락했다”고 전했다.

부토 전 총리는 귀국과 동시에 자신이 이끄는 파키스탄인민당(PPP)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펀자브 지방을 방문해 바람을 일으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19일 테러로 모든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됐다.

한편 지난달 10일 귀국을 시도하다 사우디아라비아로 재추방된 뒤 다시 입국을 노리고 있는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도 여전히 정국의 ‘변수’다. 보수당인 파키스탄무슬림연맹(PML)을 이끌고 있는 샤리프 전 총리가 내년 1월 총선 전 귀국해 정치판에 뛰어들면 파키스탄은 각각의 지지자들로 쪼개져 극도의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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