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지붕밑]“생제르맹 드 프레 카페를 떠날 순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07년 11월 1일 03시 03분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연구원(EHESS)의 파리 교외 이전에 반대하는 교수들의 움직임을 놓고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지식인’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EHESS 교수들은 최근 르몽드 기고란에서 “인문·사회과학에 적대적인 공권력이 건물 안전과 석면 제거를 핑계로 우리를 허허벌판으로 내쫓고 있다”며 “카페도, 식당도, 상점도, 나무도, 주거시설도 없는 곳에서 무슨 연구가 가능하겠느냐”고 비판했다.
공동기고문에는 저명한 사회학자 알랭 투렌, 철학자 뱅상 데콩브, 사회학자 뤽 볼탕스키 등도 서명했다.
EHESS는 그랑제콜(엘리트 양성 특수대학)과 대학이 몰려 있는 파리 라탱 구 인근 라스파유 거리에 있으나 내년부터 2012년까지 파리 교외 센생드니의 오베르빌리에에 미국식 캠퍼스를 지어 이전할 계획이다.
센생드니는 2005년 파리 교외 북아프리카계 청소년 소요 사태의 중심이 됐던 곳으로 파리 교외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다.
‘실험적 반성적 사회학 모임’을 이끌고 있는 프랑시스 샤토레노 씨는 영국 일간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EHESS 교수들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EHESS의 이전 계획은 부유한 시내와 이민 실업 폭력으로 얼룩진 가난한 교외 간의 간격을 좁힐 수 있는 기회”라며 “안락한 생활에 젖은 파리 6구의 교수들이 센생드니가 무서워 옮기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교수들이 기고문에서 다른 학교 연구자들과 만나 토론할 수 없어 학문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지만 실은 걸어서 갈 수 있는 생제르맹 드 프레의 안락한 카페를 떠나기 싫은 것이라는 얘기다.
이 학교 직원인 카트린 소테 씨는 “EHESS는 1968년 학생 시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고 평생 빈부의 계층 차이를 연구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있던 곳”이라며 “지금 우리 지식인들은 언젠가 더는 지식인이라고 불리지 않을 날이 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EHESS는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 철학자 자크 데리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 등이 가르쳤던 학교로 파리고등사범학교(ENS)와 함께 인문·사회과학의 최고 그랑제콜로 꼽힌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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