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으로 대학 입학자와 지원자 수가 같아지는 ‘대학 전입(全入) 시대’를 목전에 둔 일본에서 독자적인 기준으로 수험생의 열의나 독창성을 평가해 선발하는 입시 방식을 채용하는 대학이 급격히 늘고 있다.
흔히 ‘어드미션 오피스(AO) 입시’라 불리는 이 방식의 발상지는 미국. 대학이 원하는 학생의 자질을 명확히 한 뒤 선발 방식을 결정해 학생을 뽑는 특별 입시다. 점수보다 인물 위주로 학생을 뽑음으로써 숨은 인재를 발굴하고 대학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취지다.
일본에는 1990년 게이오(慶應)대가 처음 도입한 이래 지금은 일본 전 대학의 60%에 해당하는 454개 대학이 시행하고 있다.
2007년도에는 전체 입학자의 42.5%가 추천 입시와 AO 입시를 통해 대학에 들어갔다. 국공립대도 2000년 규슈(九州)대 등 3개 대학이 도입한 이래 급증해 2008년에는 전체의 38%인 59개 대학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독특한 입시 제도를 개발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국립 도쿄(東京)공업대 이학부는 서류 심사나 면접 없이 5시간에 걸친 수학 시험만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4일 치러진 시험에는 모집인원 20명에 568명이 응시했다. 네 문제 중 두 개를 골라 각기 답안지 4장에 걸쳐 답을 내는 과정을 상세히 적게 해 사고력을 평가한다.
학교 측은 “입시학원 등에서 정형화된 문제풀이 방식을 익혀 온 학생에게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채점에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성과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이 방식이 처음 실시된 지난해에는 도쿄대나 의대 지망생이 진로를 바꿔 이곳에 입학하기도 했다.
지난달 20일 교토(京都) 시 리쓰메이칸(立命館)대 영상학과의 AO 입시장은 몇 분간 ‘미니 영화관’이 됐다. 영상물을 본 응시생들은 질문에 따라 자기 생각을 2시간 내에 써 내려간다. “이해력, 발상, 감성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라”는 게 학교 측의 주문. 이어진 면접에서 이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 정원의 약 10%인 21명이 합격했다.
사립 세이케이(成蹊)대 경제학부는 토론회를 리드할 수 있는 학생 위주로 선발하며 국립 규슈대는 둘 이상의 학문 분야를 공부할 학생을 뽑는다. 3종의 강의를 받은 뒤 리포트를 써 내고 2시간의 그룹 토론, 소논문, 면접을 거쳐야 한다.
나고야(名古屋)학원대는 3일간 대학에 체험 입학을 하게 해 학구열이나 수업 자세를 평가한다. 국립 지바(千葉)대 교육학부는 2차 시험에서 ‘초등학교 교류체험 시험’을 봐 아동들과 교류하는 모습을 평가한다. 국립 오차노미즈(茶の水)여대 이학부의 경우 수학과는 일본 수학올림픽 A급을, 물리학과는 국제물리올림픽 참가 경험을 지원 조건으로 걸었다.
이 같은 AO 입시는 선발 대상 학생층이 두꺼워지고 특정 분야에 능력이 있는 학생을 발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AO 입시로 들어온 학생 중에는 기대대로 ‘도전파’ ‘행동파’가 있는가 하면 ‘오타쿠’(한 가지에만 몰두하는 마니아) 같은 학생도 있다. 이런 사람일수록 새로운 일본의 미래상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한 국립대 입시센터장의 평가다.
반면 학생 쟁탈전이 치열한 현실에서 일부 대학이 우수 학생을 조기에 ‘입도선매’하는 데 이용한다는 비판도 크다. 정규 입시는 선발기간이 정해져 있지만 AO 입시는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입학생의 기초학력이 제각각이라 수업이 쉽지 않다는 현장의 불만도 들려온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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