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EU “미워도 다시한번” 경제공조 모색

  • 입력 2007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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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연합(EU)이 아시아의 부상과 함께 급변하는 세계 경제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 9일 미국 워싱턴에서 처음 열린 미국-EU 간 ‘범대서양 경제위원회(TEC·Transatlantic Economic Council)’ 회의는 최근 본격화된 양자 간 경제 공조 노력의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세계 최대의 교역 규모를 자랑하는 두 지역 사이에는 경제주도권을 둘러싼 신경전도 치열해 앞으로 논의 결과가 주목된다.

▽ “경제 협력을 위한 중대 시도”=TEC는 미국과 EU 간 무역규제 완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 올해 4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EU 순회 의장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설치에 합의했다.

이번 첫 회의에서는 주로 지적재산권과 기업투자, 의약품 등의 규제 완화 문제가 논의됐다. 앨런 허버드 미 백악관 경제수석보좌관과 귄터 페어호이겐 EU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이 회의를 공동 주재했고 헨리 폴슨 재무장관,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주요 경제 인사들이 참석했다.

페어호이겐 부위원장은 “이번 회의는 두 지역의 경제 파트너십을 증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이자 불필요한 행정 규제를 없애기 위한 중대 시도”라고 평가했다. TEC는 기업 인수합병(M&A)과 국부펀드 투자를 포함해 40개 분야의 규제 완화나 단일화를 일괄 모색할 계획이다.

양측이 경제 파트너십 강화에 나선 1차적인 이유는 서로 다른 규제 기준이 거래 비용을 높여 무역의 장애 요인이 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급성장하는 아시아가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이 주도해 온 글로벌 경제 흐름을 바꿔 놓을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피터 만델슨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미국과 EU의 대중(對中) 무역적자폭이 하루가 다르게 확대되고 있다”며 “더는 우리가 글로벌 어젠다를 주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공동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 “생존 위해 손은 잡지만…”=한편으로 미국과 유럽이 서로를 “지나친 보호무역주의” “경제민족주의”라고 비판하며 견제하는 양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의 경제성장과 유로 강세에 자신감을 얻은 유럽이 글로벌 시장에서 목소리를 키우면서 양자 사이의 갈등은 본격화됐다. 더구나 유럽의 대미 수출은 증가하는 반면 수입은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달 마이크로소프트가 EU집행위에서 반독점법 위반으로 7억 유로 이상의 벌금을 부과 받고도 승복한 사건은 이런 추세에 대한 미국의 불만에 기름을 끼얹었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유럽의 경제제국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강력한 비판을 쏟아냈다.

EU집행위는 퀄컴과 구글, 인텔 등 미국의 거대 정보기술(IT)업체에 대해서도 잇달아 제소 혹은 조사에 착수한 상태여서 결과에 따라 갈등은 더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이 가금류 수입과 관련해 닭고기 세척액의 안전성을 문제 삼고 나선 것도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한 화장품의 수입을 2009년부터 금지하기로 한 것이나 유전자조작농산물(GMO) 관련 규제를 강화한 것도 미국은 타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반면 유럽은 미국이 화물을 100% 검색하는 까다로운 통관 규정으로 수출기업들을 옥죈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유럽 기업들에 미국의 회계 기준을 강요하는 등 기업 활동과 금융서비스 분야의 흐름을 일방적으로 주도해온 것도 갈등 요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9일 “TEC의 첫 시도는 의욕으로 가득 차 있지만 허점이 많으며 언제라도 난관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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