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해결할 리더 뽑자”… 호주 총선 흔드는 ‘환경 표심’

  • 입력 2007년 11월 24일 03시 03분


지구 온난화가 주요 환경 문제로 부상하면서 세계 정치권력 지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온실배출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협약인 교토의정서(1995년)의 비준을 외면했던 호주와 미국이다.

근세기 최대의 가뭄에 신음하는 호주에선 24일 총선을 앞두고 기후 문제가 최대 쟁점이다. 내년 12월 대선을 앞둔 미 민주당과 공화당의 주요 예비후보들의 환경공약 개발 경쟁도 뜨겁다. 후보들의 환경 정책이 유권자 표의 향방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과학 전문잡지 네이처 최신호는 “기후 변화가 세계 정치를 흔들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 호주 총선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기후 문제

집권 12년째인 보수파 자유당의 존 하워드(68)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승리해 다섯 번째 연임을 기대하고 있지만 그리 쉽지는 않아 보인다.

호주 여론조사 기관 뉴스폴은 21일 하워드 총리의 지지율은 46%로 노동당의 캐빈 러드(50) 당수 지지율 54%에 뒤져 하워드 총리의 연임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당 지지율에서도 노동당이 10%포인트 이상 앞서고 있다.

하워드 총리의 지지가 낮은 이유로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기후 문제’가 거론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하워드 총리가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한 것이 유권자들에게 각인되어 있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드 당수가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즉시 교토의정서를 비준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하워드 총리의 ‘아킬레스건’을 노린 것이다.

베테랑 여론분석가인 갤럭시 연구소의 데이비드 브릭스 씨는 “호주 유권자들이 단지 기후변화 관련 정책만으로 투표하지는 않겠지만 여야의 선거공약 가운데 차별화된 가장 중대한 요소”라고 말했다.

물론 하워드 총리가 친미정책으로 이라크 파병에 나선 것도 일부 실점 요인이 됐다. 하지만 환경 문제가 하워드 총리의 승패를 좌우할 중요 변수라는 데 대해선 이견이 없다.

하워드 총리가 교토의정서 비준에 반대한 후 1998년과 2001년, 2004년 선거에서 승리할 때는 기후 문제가 당락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9월을 전후로 유권자들의 기류는 확연히 달라졌다.

하워드 총리는 환경운동가로도 유명한 앨 고어 전 미 부통령이 지난해 9월 호주를 방문했을 때 그와의 만남을 거부했다. 그로부터 한달 뒤인 지난해 10월 영국 경제학자인 니컬러스 스턴은 만약 지구온난화가 지속된다면 호주의 가뭄이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후 실제로 호주에 최악의 가뭄이 닥치자 유권자들은 기후 변화 문제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시드니 소재 싱크탱크인 로위국제정책연구소가 8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대부분의 호주인은 기후 변화 문제를 핵무기, 이슬람 원리주의와 국제테러보다 더 큰 위협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초 호주 기후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73%가 기후 변화가 투표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요소라고 밝혔다. 이는 8월의 62%보다 높아진 것.

호주 총선에서 정권이 교체된다면 기후 변화 때문일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니다.

다음 달 3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교토의정서 후속대책 회의에 참가할 각국 대표들에게도 환경이 정치를 좌우한 호주 사례는 큰 관심을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 미국 정계에 부는 변화의 바람

미국 환경론자들은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됐든 2009년 1월 20일 취임 이후의 환경정책에 대한 기대가 크다.

네이처지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미국이 8년 만에 지구온난화에 대해 신속하고 강력한 행동을 취하는 지도자를 맞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토의정서 비준 반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으로 지도력이 크게 훼손된 미국이 이젠 더는 환경 문제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미 의회도 이런 움직임을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상원에는 기후 문제를 다루는 법안 2개가 상정되어 있다. 존 워너(공화·버지니아), 조지프 리버먼(무소속·코네티컷) 의원은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63%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 법안을 발의했다. 또 제프 빙어먼(민주·뉴멕시코), 앨런 스펙터(공화·펜실베이니아) 의원도 이산화탄소 방출 감소 기술 개발에 인센티브를 주는 내용의 법안을 내놓았다.

미 의회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한해 지구온난화에 대처하는 포괄적인 법안 마련에 들어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차기 대통령이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환경 문제를 추진할지가 변수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정부는 산성비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선정했다. 이 문제를 맡은 그의 국내정책 보좌관들은 거의 매일 대통령을 만나다시피했다. 대통령의 그런 의지에 힘입어 행정부가 의회를 설득해 산성비 문제 해결에 큰 진전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 국제질서에도 영향을 미치는 기후 변화

테러와의 전쟁이 역효과를 낸 탓인지 영국에서도 더욱 근본적인 안보 위협이 지구온난화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옥스퍼드 리서치 그룹의 보고서를 인용해 장기적인 안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기후 변화, 인구 이동, 식량 감소 등이라고 소개했다.

캐나다의 유권자들도 기후 변화와 이와 연계된 온실가스 방출에 대해 점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캐나다의 크로니클헤럴드지가 최근 보도했다.

리언 퍼스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지구온난화로 2040년경에는 세계화가 더는 진전되지 않고 각국이 희소 자원을 통제하는 내부 지향적 양상을 나타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후 변화에 따른 가뭄 홍수 태풍으로 식량과 물이 부족해진 지역의 사람들이 국경을 넘고 대규모 이동을 시작하면 분쟁 가능성도 높아진다. 자원의 희소성이 국제관계를 규정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연구원인 그레그 이스터브룩은 월간지 애틀랜틱에서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면 미국은 과거에 비해 따뜻해진 알래스카를 개발하고 캐나다와 그린란드에 개발 붐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특히 러시아가 ‘제2의 신대륙 발견’에 해당할 만큼 대대적으로 시베리아 개척에 나서 21세기 중반 미국과 러시아 간에 새로운 세력 균형이 이뤄질 것으로 예견했다.

지난 100년간 섭씨 0.7도의 온도 상승만으로도 현재의 기상 체계는 뒤흔들리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100년 뒤에는 지구의 온도가 6.4도 상승할 것이라는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의 기후변화 보고서는 ‘불편한 진실’이 아닌 ‘감내하기 힘든 재앙’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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