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은 이날 올해 미국인 노벨상 수상자 6명을 초대한 자리에서 고어 전 부통령을 만났다. 2000년 대선 당시 부시 대통령은 전체 득표수에서 졌지만 선거인단 확보에서 이겨 간신히 백악관에 입성했다.
오늘날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은 당시와 상반된다. 7년 만에 백악관을 방문한 고어 전 부통령은 선거에 패배한 뒤 환경운동가로 거듭났고, 올해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뒤 노벨 평화상까지 거머쥐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반면 선거에서 이겼던 현직 대통령은 7년 재임기간 내내 지지율이 내리막을 걸으며 임기를 우울하게 마무리하고 있다.
회동 전날인 25일 ABC 방송은 “두 사람이 만나는 날은 마침 부시 행정부 중동외교 정책의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회담이 열리는 날”이라며 “그러나 정작 부시 대통령이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곳은 바로 고어 전 부통령과의 만남”이라고 보도했다.
두 정치인은 2000년 선거 이후 대통령 취임식과 9·11테러 추도행사 등에서 가볍게 마주쳤지만 행사의 주최 측과 주빈으로 만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고어 전 부통령은 선거 패배 직후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부시 행정부를 매섭게 비판해 왔다. 반면 부시 대통령은 ‘승자의 패자 비판’을 부적절하게 여기는 워싱턴 정치문화에 따라 고어 전 부통령에 대한 발언은 거의 하지 않아 왔다.
백악관은 고어 전 부통령이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고어) 부통령이 기뻐할 것으로 믿는다”는 어색한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고어 캠프의 선거 전략가 출신인 도나 브라질 씨는 “부시 대통령이 의례적인 축하의 말을 건넨 뒤 고어 전 부통령이 곧바로 방을 떠날 수도 있다”며 두 사람의 싸늘한 관계를 설명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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