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돈 벌기 위해…” 워싱턴 정객들 은퇴

  • 입력 2007년 11월 28일 03시 05분


지난해 1월 트렌트 롯(65)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은 “다가오는 11월 중간선거에 출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16년간 8선 하원의원, 이후엔 18년간 3선 상원의원을 지낸 그였기에 출마 사실을 굳이 발표하는 것이 느닷없다 싶었다.

이후 계속된 언론보도를 통해 비로소 의아함이 풀렸다. 워싱턴포스트는 “롯 의원이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미시시피 주의 자택을 잃은 뒤 다시 선거에 출마할지 고민해 왔다”고 전했다. 재산이 많지 않은 그가 2013년 71세로 6년 임기를 마친 뒤엔 로비스트로 고소득을 올릴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4선에 성공했음에도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26일 은퇴를 선언했다. 미 역사상 임기 중 사퇴한 상원의원은 단 2명뿐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문제가 있어서 그만두는 건 아니다.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고, 더 늦기 전에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미 언론은 그가 ‘은퇴 후 1년간 로비스트로 취업 못 한다’는 규정에 따라 2009년 1월 이후에나 최고의 전관예우를 누리는 로비스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가을 통과된 윤리규정 때문에 내년 이후 은퇴하는 정치인에게 적용되는 로비활동 불허기간이 2년으로 늘어난 점을 고려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결국 돈 때문에 은퇴하고,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은퇴 시점을 앞당겼다는 관측이었다.

언제부턴가 워싱턴에서는 “돈 때문에 떠난다”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올가을 백악관을 떠난 토니 스노 대변인도 “10∼14세인 자녀가 셋”이라며 늘어나는 씀씀이보다 소득이 적은 점을 사임 이유로 들었다.

키트 본드(미주리 주) 상원의원에 대한 한 의회전문잡지의 인물평에는 이런 표현도 나온다. “주지사를 거쳐 1986년 이후 내리 4선에 당선됐다. 4선 고지에 올랐을 때 그는 만 65세였다. 아직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돈 벌러 떠날지를 의원들이 고민하는 때다.”

실제로 미국에선 돈을 벌려면 정치판을 떠나야지 돈을 벌기 위해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깔려 있다. ‘공직을 잘 마친 뒤 민간 영역에서 떳떳하게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는 시각도 존중받는다.

롯 의원에겐 독직과 같은 추문이 따라다니지 않았다. 은퇴를 선언한 그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김승련 워싱턴 특파원 sr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