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위한 선거’ 각본대로…각본 없던 ‘차베스의 좌절’

  • 동아일보
  • 입력 2007년 12월 4일 03시 05분


■ 러시아 여당 총선 압승

개헌선 돌파 의회장악 후계자 지명도 초읽기

‘총선 압승→차기 대통령 지명→현직 대통령 영향력 유지.’

2일 실시된 러시아 총선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향후 정국 시나리오대로 진행됐다.

2003년 총선에서 득표율 37.8%에 그쳤던 통합러시아당(ER)이 득표율 63.2%로 압승을 거둔 것은 푸틴 대통령의 후광 효과 때문이라는 데 러시아 안팎의 평가가 일치한다.

전러시아여론조사센터(VCIOM)의 발레리 페도로프 사무국장은 “러시아의 안정을 바라는 유권자들이 전국구 후보 1번으로 등록한 푸틴 대통령을 보고 투표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ER는 개헌 정족수도 돌파해 헌법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강력한 여당이 됐다.

러시아는 의원 450명 전원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뽑는다. 의석 배분을 받는 최소 득표율은 7%로 이번 총선에 나온 군소정당 중 7곳은 7%를 넘기지 못했다. 러시아 선거관리위원회는 ER가 최종적으로 450석 중 310∼315석을 차지해 개헌정족수 301석을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러시아 의회에서는 11.6%를 얻은 러시아공산당이 혼자 야당 역할을 떠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득표율 10% 미만인 자유민주당과 정의러시아당은 이미 푸틴을 지지하는 친(親)크렘린 정당임을 자인했다.

초강력 대통령제 아래서 의회마저 초강력 여당이 장악함에 따라 러시아 대통령의 영향력은 1991년 소련 붕괴 이래 최대로 확대됐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의회까지 장악한 대통령을 견제할 제도적 장치는 이미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푸틴 대통령은 유권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자신의 후계자를 지명하고 대선 정국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대선일은 3월 2일. 푸틴 대통령의 후계자 지명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ER 전당대회가 열리는 17일을 전후해 지명될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명되는 인물은 빅토르 줍코프 총리, 드리트리 메드베제프 제1부총리, 세르게이 이바노프 제1부총리 등이다. 푸틴 대통령이 퇴임 후 안정적인 영향력 유지를 위해 러시아 정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제3의 인물을 지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각본 없던 ‘차베스의 좌절’▼

■ 베네수엘라 개헌안 부결

믿었던 서민층 등돌려 영구집권 꿈 일단무산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헌법을 뜯어고쳐 ‘사실상 영구 집권’하겠다는 꿈은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이 부결돼 일단 무산됐다.

하지만 개헌안 찬반 투표의 차가 2%포인트에 불과하다는 점은 앞으로 베네수엘라 정국의 혼선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차베스 대통령도 투표 결과가 나온 후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개혁안은 죽지 않았고 아직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투표 결과는 마치 육상경기 결과를 두고 사진판독(photo finish)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근소한 차이”라고 말했다.

투표 결과에도 불구하고 “민심이 자기에게서 떠난 것이 아니다”고 강조하면서 정국을 주도할 새로운 방법을 찾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지난해 당선돼 올해 새 임기가 시작된 그는 2012년 말까지 임기가 남아 있어 시간도 많다.

다만 이번 개헌안 국민투표는 그동안 지리멸렬했던 야당 세력이 뭉쳐 힘을 발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개헌안 부결에 한목소리를 내며 세를 강화한 야권은 앞으로 차베스 대통령이 또 다른 어떤 무리한 개혁안을 꺼내들면 이에 대항할 만한 세력으로 부상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그가 자신 있게 믿었던 것과는 다른 민심이 나타난 것을 가장 아파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각종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으로 서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지난 9년간 ‘선거불패’라는 아성을 쌓았다. 그런 만큼 투표율이 56%에 불과하고 서민층 거주지역에서조차 득표율이 생각만큼 높지 않은 것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서민층의 낮은 투표율은 더한 독단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곤경에 빠진 차베스 대통령이 ‘외부에서’ 돌파구 마련에 나설 경우 국제사회에도 파장이 우려된다. 그는 국민투표 이전부터 미국이 이번 투표에 어떤 형태로든 간섭하면 석유수출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그가 반미 감정을 앞세워 석유를 무기화하면 고유가 시대의 세계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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