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빛절망 걷어낸 ‘30만명의 기적’

  • 입력 2007년 12월 11일 03시 01분


■ 1997년 日 미쿠니 마을에선

충남 태안 앞바다 원유 유출 사건은 1997년 1월 2일에 있었던 일본 후쿠이(福井) 현 미쿠니(三國) 정 앞바다의 중유 유출 사건을 연상케 한다.

미쿠니 마을은 해녀들의 마을로 불리며 아름다운 해안 절벽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난방용 중유를 싣고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러시아 캄차카로 가던 러시아 선적 나홋카 호가 폭풍우를 만나 선체가 동강이 나는 바람에 흘러나온 최소 6240kL의 기름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태안과 똑같은 피해를 봤다.

중유 피해는 후쿠이 현뿐만 아니라 이시카와(石川) 아키타(秋田) 니가타(新潟) 효고(兵庫) 현 등 9개 현에 크고 작은 피해를 안겼다. 해산물을 채취해 생계를 유지하는 마을 사람들은 바다를 되살리는 데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며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후에 ‘기적’이라고 불리는 일이 일어났다. 이 사고가 매스컴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자 ‘바다를 살리자’며 자원봉사자들이 몰려왔다. 정년퇴직한 전직 회사원, 머리에 물을 들인 청년, 여대생, 석유회사 직원, 보트 동호인회 등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연인원 30만 명.

자원봉사자들은 겨울바다에 들어가 언제 끝날지도 모를 기름제거작업을 묵묵히 계속했다. 그러길 두 달 반. 불가능할 것 같던 해안의 기름을 대부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에는 자갈 하나하나에 묻어 있던 기름까지 제거했다.

“자기의 보물이라도 닦는 것처럼, 그렇게 닦아서는 바다로 던졌다. 너무도 기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는 자갈을 닦던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어부 마가이 요시하루(間海吉春) 씨의 회고담이다.

이들의 활동이 더욱 주목받은 이유는 청년회의소와 관광협회 등 주민단체가 스스로 ‘미쿠니 자원봉사자 본부’를 만들어 몰려드는 자원봉사자 접수 및 업무분장, 구호물품 관리, 숙식 제공 등의 일을 매끄럽게 처리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활약상은 일본 공영방송인 NHK의 인기프로그램 ‘프로젝트X-도전자들’에서 ‘소생하라 일본해, 나홋카 호 중유 유출-30만 명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2000년 11월에 방영돼 호평을 받았다. ‘프로젝트X’는 책으로도 나온다. ‘30만 명의 기적’을 다룬 장(章)의 도입 대목. “이빨을 드러내는 겨울 바다의 거친 파도를 앞에 두고, 정신이 아득할 정도의 기름과의 싸움. 이것은 이름 없는 30만 명이 이뤄 낸 기적의 기록이다.”

심규선 기자 ksshim@donga.com


촬영 : 김미옥 기자


촬영 : 김미옥 기자


촬영 : 김미옥 기자


촬영 : 김재명 기자


촬영 : 김재명 기자


촬영 : 김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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