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피랍…봉사활동? 선교목적? 동정과 미판 ‘극과극’▼
개신교 ‘공격적 선교’ 내부서 자성 목소리
여행 금지국 지정에 기본권 침해 비판도
9월 2일 오전 6시 35분경 인천국제공항.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 세력에 납치됐다 풀려난 분당 샘물교회 소속 봉사단원들이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한쪽 구석에서 20대 청년 한 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봉사단원들에게 달걀을 투척하려다 사전에 발각된 것이다.
봉사단원들은 아프간 사태의 최대 피해자들이다. 더구나 그들 중 2명은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그런 그들이 입국하려 할 때 달걀을 던지려 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아프간 사태에 대한 일부 국민의 차가운 시선을 여실히 보여 줬다.
○ 인질은 무고한 피해자, 교회도 책임 있다
아프간 사태의 본질은 ‘탈레반 무장 세력이 무고한 민간인을 납치해 억류하고 일부를 살해한 것’이었다. 비난의 화살은 당연히 탈레반을 향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탈레반에 대한 비난과 함께 한국의 개신교(기독교) 단체도 책임이 없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단체가 위험 지역인 아프가니스탄으로 봉사단원을 무책임하게 보낸 점이 도마에 올랐다.
샘물교회 봉사단원 몇 명은 아프간으로 출발하기 직전 인천공항에 게시된 당국의 경고문 앞에서 브이(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 경고문은 ‘탈레반이 수감 중인 동료의 석방을 위해 한국인들을 납치한다는 정보가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들의 사진이 납치 사건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을 때 공개되자 인질들에 대한 동정론이 식기 시작했다. “국가의 경고를 비웃으면서까지 갔으니 국가가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우선 인질들의 목숨부터 살리고 잘잘못을 따지자’는 목소리도 사진 공개 전보다 약해졌다.
정부는 올해 초부터 아프간을 위험 지역으로 분류해 여행 자제를 권고했다. 그러나 여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2004년 이라크에서 김선일 씨 피살 사건이 일어난 이후 위험 지역에 대한 여행 자제를 거듭 강조했지만 ‘위험 지역으로의 선교 봉사활동’을 위한 출국을 제도적으로 막지는 않았다.
아프간 피랍 사태 이후에야 정부는 아프간, 이라크, 소말리아 등 3개국을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했다. 그러자 이번엔 ‘여행 금지국을 법으로 정하는 국가는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아프간 사태는 ‘국민 생명 보장이 최우선이다’는 주장과 ‘이동의 자유 같은 기본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둘러싼 뜨거운 논란을 촉발했다.
○ 봉사냐 선교냐 논란
이어서 논란은 봉사단원의 아프간 방문 목적이 ‘선교 활동’인지 ‘봉사 활동’인지 따지는 것으로 확산됐다. 사태 초기 정부는 탈레반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종교 활동이 아닌 순수 봉사 활동을 위해 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탈레반의 카리 유수프 아마디 대변인은 7월 21일 알 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기독교 선교 활동은 이슬람에 대한 범죄 행위”라며 이들의 활동을 선교와 연결시켰다. 며칠 뒤엔 한 누리꾼이 피랍자 중 한 명의 홈페이지 게시물을 왜곡해 영어로 번역한 후 인터넷에 띄웠다. ‘아프간의 이슬람 사원에서 기독교식 예배를 봤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한국 개신교의 ‘전투적 해외 선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교회가 양적 팽창에만 집착하다 보니 현지의 전통과 현지인들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개신교의 이슬람권 선교 활동에 정통한 한 교회 관계자는 “개신교 내에선 누가 얼마나 많은 선교사를 오지에 파견했는지를 신앙심의 척도로 여기는 풍토가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통계에 따르면 2006년 현재 한국은 173개국에 1만6600여 명의 선교사를 파견했다. 6만 명인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 개신교 내에서도 자성 목소리
논란은 선교 방식에 대한 비판을 넘어 ‘개신교의 자기중심적, 배타적인 태도’에 대한 성토로 번졌다. 개신교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9월 7일 개신교계의 원로 지도자들은 성명을 내고 “그동안 선교에 대한 지나친 열정으로 우월적, 정복적, 배타적, 일방적, 과시적, 경쟁적 태도를 취한 사례가 없지 않았다”면서 “이를 반성하며 앞으로 현지인의 정서를 존중하는 쌍방향적 자세를 취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KWMA 이사장인 길자연 목사는 14일 “많은 교회가 참여해 새로운 선교 방향과 방식을 논의하는 조직을 만들기로 최근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 얼마 전에는 미국의 선교 전문가와 한국 교계 및 정부 기관이 참여하는 세미나도 열렸다고 길 목사는 전했다.
길 목사는 “아프간 사태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지만 일방주의적 선교를 지양하고 현지 실정에 맞는 선교를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에는 개신교 내 학자들이 “아프간 사태로 자기중심적 세계의 확장에 지나지 않는 선교는 근본적으로 재고돼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내용을 담은 저서 ‘무례한 복음’을 펴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조승희 총격…한국사회 집단자책감 미국인들은 “Why?”▼
美 “개인의 범행”… 한국 사과론 어리둥절
국내서도 美사회-이민책임론 설득력 잃어
“한국요? 멀리서 왔군요.”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격사건 다음 날인 4월 17일 오전. 굳게 잠긴 조승희 부모의 집 부근에서 만난 주민 마셜 메인 씨는 ‘한국 기자’에게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용의자가 한국 출신 영주권자 조승희로 밝혀졌다”는 충격적 발표를 듣자마자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에 있는 조 씨의 부모 집으로 황망히 달려간 기자는 의아했다. “경찰 발표를 TV에서 보았으면 코리아(Korea)라는 단어에 반응이 있을 법한데….”
그러나 메인 씨의 답변은 명쾌했다. “충격적인 사건의 용의자가 이웃에 살고 있었다는 데 정말 놀랐어요. 하지만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 직후 통화를 한 미국인 지인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개인의 범행일 뿐이다. 나라를 대표해서 온 사람도 아니고 정치적 테러도 아니지 않으냐” “범인은 미국인이거나 영국인일 수도 있었다. 한국인이란 건 단지 여러 우연 중 하나일 뿐이다”라는 대답들이었다.
이 같은 반응을 급히 서울로 송고했지만 이미 ‘집단적 자책감’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주목을 끌기는 힘들었다.
총격 사건 후 한국에서는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의 기억을 떠올리며 교민 안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한미 관계, 특히 불과 보름 전 서명한 자유무역협정(FTA)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정부 일각에선 추모 사절단을 보내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태식 주미대사는 추모예배에서 “슬픔을 나누고 자성하는 뜻에서 32일 동안 금식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곧 교민 2세들을 주축으로 “미국을 너무 모른다”는 반론이 일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은 이번 사건이 정신이상자의 광란극으로서 허술한 총기 관리 시스템이 문제라고 여기는데 왜 한국인들이 사과를 하느냐”라는 문제 제기였다. 미국의 지도층 인사들도 “한국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내 여론도 돌아서 사과론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집단 히스테리’ ‘극단적 집단주의’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사건 후 거의 8개월. 전문가들은 당시의 논란이 미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좋은 교재’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1969년 이민 온 리처드 신(신동준) 박사는 13일 “지금까지 조승희 사건에 대해 한국의 책임을 거론하는 것을 들어 본 일이 없다”며 “미국 사회의 반응은 성숙하고 차분했다”고 말했다.
신 박사는 “한국 사회의 집단적 사과 움직임에 찬성하지 않지만 그것이 나빴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지는 애도와 반성으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의 반응을 전하면서 “감사한다”고 논평했다.
버지니아공대 인근의 한 주민은 “인터넷과 세계화의 영향으로 다른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낯선 반응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한국인들의 반응은 진심 어린 것임을 알게 됐고 그 진심이 가슴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당시 이 대사는 출장에서 급히 돌아와 사전 준비된 원고 없이 발언하면서 ‘사과’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본의는 슬픔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뜻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는데 한국에선 단어 하나를 놓고 비난이 쏟아졌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가 교민에 대한 보복을 우려했던 데 대해 한 교포 학자는 “미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음을 이 일로 깨닫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대책본부장이었던 권태면 워싱턴 총영사는 “사건 초기엔 교민 사회조차도 물리적 정신적 피해를 걱정했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멜팅팟’(melting pot·여러 인종 문화가 어울린 사회)으로 불리며 감정보다 이성을 앞세우는 미국 사회의 성격이 그 후 잘 드러났다”고 말했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사건 때 한국 사회의 반응과 비교하는 사람도 많았다.
한편 이 사건은 이념적 성격을 띤 ‘미국 사회 책임론’ ‘이민 책임론’ 논쟁으로도 번졌다. 한국 일각에서 사건의 원인을 이민 1.5세대의 부적응이나 미국 사회의 따돌림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
“조승희가 발표를 하는데 목소리가 이상해 반 아이들이 웃었다”는 등의 에피소드가 이 같은 주장의 근거였다. 일부 언론은 ‘비정한 미국 사회’ ‘낯선 땅에 적응하지 못한 영혼’이라며 미국 사회 구조에 책임을 돌렸다.
그러나 상당수 교민은 △이민 초기에는 영어 때문에 누구나 어려움을 겪지만 대다수 아이들은 별 문제 없이 적응한다는 점 △한국인이 많은 워싱턴 근교에서 인종차별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는 점 등을 들며 “모든 것을 사회와 환경의 책임으로 돌리려 하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같은 환경에서 자란 조승희의 누나는 미국 최고 명문대를 나와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이후 조승희가 미국 이민 전부터 말을 거의 하지 않는 등 폐쇄적인 성격을 보였고 법원 판결로 정신질환 치료를 명령받은 사실 등이 밝혀지면서 ‘미국 사회 및 이민 책임론’은 설 자리를 잃어 갔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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