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명사서 동사로”
‘일하는 대통령은 동사를 좋아한다?’
예부터 문호와 철인이 많은 프랑스는 ‘추상명사의 나라’로 불려왔다.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도 ‘자유 평등 박애’라는 추상명사들로 표현된다.
그러나 실용주의 개혁으로 주목받는 니콜라 사르코지(사진) 대통령의 등장 이후 프랑스 정계에서 추상명사가 퇴조하고 있다고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 최신호가 보도했다. 프랑스는 정치인들도 사상가들만큼 추상명사를 애용해 왔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연설문에서 화합, 자유, 박애 등 13개의 추상명사를 한 문장 안에 ‘구겨 넣은’ 일도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다르다. 그가 취임 직후 외교정책을 밝힌 18쪽짜리 연설문에는 전임자들이 즐겨 사용했던 ‘번영’이나 ‘위엄’과 같은 추상명사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았다.
다몽 마야프르 니스대 교수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대통령 선거 캠페인 연설문을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나(Je)’였고, 다음이 동사였다고 밝혔다. 그가 대선 캠페인 당시 내걸었던 슬로건 ‘더 일하고 더 벌자(Travailler plus pour gagner plus·Work more to earn more)’가 대표적인 사례.
이코노미스트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동사를 애용함으로써 프랑스의 개념론 전통에 도전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프랑스를 ‘생각하는 나라’에서 ‘일하는 나라’로 바꿔 놓으려는 시도라는 설명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개념론에 대한 도전’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최고지도자의 프랑스 방문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확인됐다.
지식인들은 “(인권을 무시한) 카다피의 프랑스 방문 자체가 프랑스 고유의 인류 보편적 양심의 목소리를 약화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들을 “남들 일할 때 카페에서 커피나 홀짝이는 카페 엘리트”라고 비난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카다피의 프랑스 방문을 계기로 에어버스 여객기, 라팔 전투기 등 146억 달러(약 13조5795억 원)의 판매 계약을 리비아와 체결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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