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목소리’ 파바로티-‘기자정신’ 나가이
‘빈민의 아버지’ 피에르 신부-‘상하이방’ 황쥐
‘탱크 위의 사자후’로 소련을 무너뜨렸던 보리스 옐친 러시아 초대 대통령을 비롯해 올해도 수많은 별이 자취를 감췄다.
4월 23일 76세로 사망한 옐친 전 대통령은 옛 소련의 붕괴와 러시아의 재탄생, 세계질서의 재편으로 이어지는 20세기 후반 세계사의 한복판에 서 있다가 1999년의 마지막 날 블라디미르 푸틴을 후계자로 지명한 뒤 국가 원로로 조용히 21세기를 보내 왔다.
유엔 사무총장과 오스트리아 대통령을 지낸 뒤 ‘나치 독일 장교 경력’ 논란에 휩싸였다가 6월 88세로 사망한 쿠르트 발트하임과 ‘상하이방’의 거두였던 중국의 황쥐(黃菊·69) 부총리도 올해 사망한 대표적인 정치인들.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미 하원에서 통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헨리 하이드(83) 전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장과 한국을 방문해 군 위안부 문제를 공식 사죄하고 철저한 진상 조사를 약속했던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88) 전 일본 총리도 올해 타계했다.
‘천상의 목소리’로 칭송받았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그가 9월 6일 71세로 타계한 직후 발매된 추모 앨범은 유럽에서 클래식 차트 판매 순위 1위에 올랐다. 러시아가 낳은 ‘세기의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도 8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벽돌 더미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한 그는 격변의 시대를 함께한 옐친 전 대통령이 사망한 지 나흘 뒤 숨을 거뒀다.
영화계에서는 생전 4차례나 아카데미상을 거머쥐었던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 감독이 7월 30일 89세로 타계했다. 베리만 감독은 1950, 60년대 영화를 ‘원시적인 매체’라고 얕보던 지식인들에게 놀라움을 안겨 주며 유럽의 예술영화 지형도를 이끌었다.
모더니즘 영화의 거장인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94) 감독, 대만 뉴웨이브의 기수로 불린 데이비드 양(양더창·楊德昌·59) 감독도 올해 세상을 떠난 영화계 명장들. 미국에서는 38년간이나 미영화협회장을 지내면서 할리우드 영화의 세계 진출을 주도했던 ‘할리우드의 대부’ 잭 밸런티 전 회장이 4월 26일 85세로 사망했다.
학계의 거두들도 올해 우리 곁을 떠났다. 냉전시대 미국의 자유주의 철학을 정립했던 아서 슐레진저 2세가 2월 28일 77세로 사망했다. 사상 처음으로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을 사용한 슐레진저 2세는 평소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할 최상의 무기는 자유롭고 두려움 없는 언론”이라는 신념을 설파했다. 3월 6일에는 현대사회를 모사된 이미지가 지배하는 ‘복제의 시대’로 규정한 프랑스의 저명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77)가 사망했다. ‘미국의 데리다’로 불리며 포스트모더니즘에 큰 영향을 끼친 리처드 로티 스탠퍼드대 교수도 6월 8일 76세로 숨졌다.
일본 APF 뉴스통신사의 영상기자였던 나가이 겐지(長井建司·50)는 9월 27일 미얀마 시위 현장에서 총에 맞아 쓰러져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은 기자 정신으로 세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프랑스에서는 1월 22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수차례 거론돼 온 ‘빈민의 아버지’ 아베 피에르 신부가 94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미국에서는 기독교 우파 보수층을 정치세력으로 결집해 미국 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복음주의 기독교계의 거두 제리 폴웰 목사가 5월 15일 7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경제계에서는 ‘라면의 아버지’로 불리는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97) 일본 닛신식품 회장과 히라이와 가이시(平巖外四·93) 전 일본 경단련 회장, 친환경 화장품업체인 ‘더 보디숍’의 창업주 애니타 로딕(65) 여사 등이 올해 별세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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