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문명의 제왕들은 죽거나 쫓겨나기 전에는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나아가 이들은 생전 권력을 사후(死後)에도 과시하고 후임자에게 압박을 가하기 위해 피라미드 같은 기념물을 지었다.
현대에도 이런 경향은 바뀌지 않았다. 특히 동상과 기념물을 무수히 건축한 공산권 독재자들의 행태는 고대 제왕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권좌에서 물러날 때면 기념물이라도 남겨 놓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아쉬움이 남는 것일까.
파이낸셜 타임스는 27일 “최고 권력자가 일상으로 복귀하기는 쉽지 않다”며 국가 정상들이 권좌에서 물러나기 이전과 실권(失權) 이후에 보이는 다양한 행태를 소개했다.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기념물을 짓는 유형이 첫 번째로 꼽혔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문화에 대한 관심을 과시라도 하듯 바스티유 오페라극장과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를 건축했다. 올해 5월 물러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제3세계 민속품을 주로 전시하는 케브랑리 박물관을 건립하고 언젠가 ‘시라크 박물관’으로 명칭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부터 역대 대통령이 자신의 이름을 붙인 도서관 건립에 공을 들였다. 벤자민 허프바우어 루이스빌대 교수는 “대통령들은 이를 통해 당황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치적을 과시하면서 실정(失政)은 뒤로 숨겼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물러나는 지도자가 많아지면서 은퇴 후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이들의 활동은 후임 대통령과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들은 주로 재단을 설립해 사회활동을 지속한다. ‘카터 센터’를 통해 분쟁지역 문제에 적극 개입하면서 재임 시절보다 더욱 주목받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도 재단을 통해 환경과 종교 간 대화 문제에 앞장서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아예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단을 설립했다.
아예 자존심을 팽개친 채 한 직급 아래로 복귀한 지도자도 적지 않다. 1990년대 초 스웨덴 총리를 지낸 칼 빌트 씨는 유럽연합(EU)과 유엔 활동을 등에 업고 2006년 외교장관으로 복귀했다.
시라크 대통령 시절 총리를 지냈던 알랭 쥐페 씨는 올해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의 환경장관으로 입각했으나 총선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장관직에서도 물러나야 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마거릿 대처, 존 메이저 총리 등 영국의 많은 지도자도 ‘컴백’을 꿈꿨으나 실패했다며 “모든 정치 인생은 실패로 끝나게 마련”이라는 한 영국 정치인의 격언을 소개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을 통해 치적을 과시하고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지도자들 사이에서 샤를 드골 대통령의 은퇴 후 모습은 특히 돋보인다고 이 신문은 소개했다. 드골 대통령은 연금도 마다한 채 고향집으로 돌아가 여생을 회고록 집필에 전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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