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배후 공방…파키스탄 총선 실시 어려울 듯

  • 동아일보
  • 입력 2007년 12월 28일 02시 57분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가 27일 자살폭탄 테러로 사망하면서 파키스탄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당장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파키스탄 전역에서 격렬한 반응이 일어났다. 지지자들은 부토 전 총리가 이송된 라왈핀디의 병원에서 유리문과 차량을 부수며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카라치, 페샤와르 등 다른 도시에서도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일부는 “살인자 무샤라프”를 외쳤다.

부토 전 총리를 향한 테러는 그가 8년간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10월 18일부터 시작됐다. 카라치 도심에서 환영 인파에 둘러싸인 그를 겨냥한 폭탄테러가 발생해 최소 130여 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진 것.

이날부터 파키스탄에서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혼란상이 반복됐다. 테러로 무샤라프 대통령과 부토 전 총리의 ‘권력 분점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초 부토 전 총리가 귀국한 것은 내년 총선에서 그가 승리할 경우 ‘무샤라프 대통령-부토 총리’로 권력을 분점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테러를 비난하는 시위가 잇따르면서 분위기가 악화되자 무샤라프 대통령은 11월 3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는 비상사태 기간에 대통령 연임의 정당성을 확보한 뒤 육군참모총장 직을 내놓았다. 그러나 법조인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 시위가 연일 계속됐다.

11월 26일 무샤라프 대통령의 또 다른 정적인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가 망명 생활 끝에 귀국하면서 정국은 한층 복잡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반(反)무샤라프’로 전열이 정비되는 듯하던 야권은 내년 1월 8일 총선을 앞두고 부토 전 총리, 샤리프 전 총리와 기타 야당들로 쪼개졌다.

야권은 분열됐지만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최근 조사에서 파키스탄 국민의 67%가 ‘무샤라프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고 응답하는 등 민심이 이미 정부에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까지 가세한 테러가 곳곳에서 자행됐다. 최근에는 대통령궁 인근에서 폭발이 일어나기도 했다.

부토 전 총리가 사망함에 따라 총선이 예정대로 치러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테러의 배후를 놓고 각각의 지지세력 간 충돌로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다.

정국 불안을 틈타 세를 확장해 온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힘을 모을 여지도 커졌다. 이 경우 미국이 무샤라프 대통령을 앞세워 진행해 온 ‘테러와의 전쟁’에도 차질이 빚어지게 된다.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비상사태 해제를 촉구했다가 거절당한 미국이 파키스탄 정국에 어떤 식으로 개입하게 될지도 주목된다. 미국 텍사스 주 크로퍼드 목장에서 성탄절 휴가를 보내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날 강력한 테러 비난 성명을 발표하고 부토 전 총리의 사망을 애도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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