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철희]美대선, 여성과 흑인의 힘

  • 입력 2008년 1월 8일 02시 52분


도도새는 경주 코스를 동그랗게 그렸다. 도도새 왈, “모양은 어떻든 상관없어”. 새들과 쥐는 모두 코스 위에 섰다. ‘하나 둘 셋 출발!’ 그런 건 없었다. 내키는 대로 뛰고 아니면 빠지고….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었다.

반 시간쯤 지나 도도새가 외쳤다. “경주 끝!” 모두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누가 이겼어?” 도도새는 마치 셰익스피어처럼 손가락을 이마에 얹고 생각에 빠졌다. 한참 뒤 도도새는 “모두 다 이겼어”라고 선언했다.

모두 합창하듯 물었다. “그럼 누가 상을 주지?” 도도새는 앨리스를 가리켰다. 모두 앨리스에게 “상! 상!”을 외쳤다. 앨리스는 어쩔 줄 몰라 하다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하나씩 나눠 줬다….

앨리스는 모든 게 터무니없게 느껴졌지만 모두가 너무 진지해서 웃을 수 없었다.

루이스 캐럴(본명 찰스 루이스 도지슨)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그린 ‘코커스 경주’ 얘기다. 옥스퍼드대 수학교수가 보기에도 정당의 당원대회(코커스)라는 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그저 빙빙 도는 게 전부인 코커스 경주와 다를 바 없었다.

미국 대통령후보 경선 첫 관문인 아이오와 코커스가 3일 열렸다. 학교나 교회 수천 곳에서 코커스를 열고 지지후보별로 당원들을 모이게 해 일일이 머릿수를 세는 방식이 과연 언젯적 얘기인지. 더구나 공개투표 방식이라니….

하긴 옛 소련 사회를 경험한 나탄 샤란스키는 ‘민주주의를 말한다’에서 “누구든 광장에 나가 자기 견해를 두려움 없이 밝힐 수 있다면 자유사회라 할 수 있다”고 썼다. ‘광장 테스트’ 판별법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아이오와는 자유사회인 것만은 확실하다.

어쨌든 이처럼 매우 혼란스럽지만 자세히 보면 별것 아닌 과정 속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가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대세론을 뒤엎는 ‘검은 돌풍’ 드라마가 생길 수 있었는지 모른다.

오바마 후보는 8일 뉴햄프셔에서도 이 여세를 몰아갈 기세다. 이제 관심은 최초의 여성 또는 흑인 대통령후보 탄생 여부에서 ‘남자보다 남자 같은 여성’ 대 ‘백인보다 백인 같은 흑인’의 대결로 옮아간 듯하다.

두 사람은 여성 대표나 소수인종 대표임을 내세우지 않는다. 과거 주지사나 상원의원이 되기 위한 발판으로, 또는 소수자 권익 향상을 위한 발언권 확보 차원에서 도전장을 낸 마이너 출마자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들에겐 ‘독한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 만한 자기 극복의 과정이 있었다.

힐러리는 남편의 외도에 대해 “빌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참았다. 그 결과 오늘날 남편을 유세장에 대동해 1992년 남편이 썼던 ‘하나 사면 하나는 덤(Buy One, Get One Free)’ 전략을 재현하고 있다.

오바마는 어떤가. 그는 청년 시절에 대해 “마약중독자, ‘뽕쟁이’, 내가 가고자 하는 최종 기착지가 그것이었다.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녀석인지 증명하려고 애썼다”고 썼다. 하지만 오바마는 이런 정체성 혼란을 극복해 냈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최대 적은 오히려 자기와 같은 여성, 같은 흑인이다. 일각에서 ‘출세를 위해 남편의 부정마저 눈감았다’ ‘마치 백인처럼 행동한다’는 곱지 않은 시각이 여전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들에겐 갈 길이 멀다. 아직은 당내 경선일 뿐이다. 본선 상대는 백인 남성 후보다.

이철희 국제부 차장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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