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 입력 2008년 1월 18일 03시 00분


미국 주요 금융회사의 해외 자본 투자 유치 현황
(단위: 달러)
투자유치 은행해외 자본유치액
씨티그룹아부다비투자청, 싱가포르정부,
쿠웨이트 투자청,
알 왈리드 빈 탈랄 사우디 왕자
263억
메릴린치한국투자공사, 싱가포르 테마섹,
미즈호은행, 쿠웨이트투자청
128억
모건스탠리중국투자공사 50억
블랙스톤중국투자공사 30억
베어스턴스중국국영증권 10억
자료: 월스트리트저널, 야후파이낸셜

美금융사들, 亞 - 중동서 잇단 ‘자금수혈’

“미국, 팝니다(America, For Sale).”

뉴욕에서 발행되는 타블로이드 신문 뉴욕데일리뉴스는 16일 1면에 이런 제목을 큼지막하게 뽑았다.

씨티그룹과 메릴린치 등 월가 투자회사들이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로 막대한 손실을 기록하면서 중동과 아시아의 국부(國富)펀드들로부터 자금을 수혈하는 것을 빗댄 표현이었다.

15일 최악의 분기 실적을 발표해 전 세계 주식시장 폭락 사태를 촉발시켰던 씨티그룹이 지금까지 아부다비투자청, 싱가포르정부 등 해외로부터 조달한 금액이 260억 달러가 넘는다.

메릴린치도 한국투자공사에서 20억 달러를 조달하는 등 중동과 아시아에서 128억 달러를 유치했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와 미국 최대 사모(私募)펀드인 블랙스톤 등도 해외 자본을 긴급 수혈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금융회사들이 잇달아 해외 자본을, 그것도 유럽이 아닌 중동과 아시아 자본에 손을 벌리는 것은 국제 금융계에서 힘의 변화를 보여 준다.

특히 그동안 막대한 자본 축적을 바탕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돈줄 역할을 해 왔던 미국 금융회사들이 이제는 거꾸로 얼마 전까지 금융위기를 겪던 나라에까지 손을 벌리는 상황으로 몰리면서 미국 내에선 “어쩌다 이 지경까지…”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미국 금융회사들이 다급해진 것은 지난해 여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동으로 신용위기가 불거진 이후 월가 금융회사들이 천문학적인 손실을 기록했기 때문. 손실총액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0.7%에 달하는 1000억 달러에 이른다는 통계도 나왔다.

해외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서 이에 대한 미국 내 논쟁도 점차 가열되고 있다.

NBC방송은 16일 저녁뉴스 톱기사로 메릴린치가 한국 일본 쿠웨이트 등으로부터 자금을 수혈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미국 사회에서 이에 대한 찬반 여론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화가 진행된 상황에서 해외에서 필요한 자금을 수혈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견해가 있는 반면 주요 금융회사들의 지분이 해외에 매각되면 해외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선 그동안 미국이 너무 흥청망청 돈을 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대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난해 두바이 포트월드의 미국 항만운영권 매입 시도가 정치권의 반발로 무산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번에는 미국 정치권이 의외로 조용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6일 이 점을 거론하며 “정치권이 외국 자본 유입 이외엔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바니 프랭크 하원 금융위원장은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우리는 돈이 절실한 상황이고 금융권의 손실 규모를 감안할 때 외국 자본 수혈이 도움이 된다”며 “외국 자본 수혈이 없었더라면 상황은 더욱 나빠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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