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금당벽화 소실 계기 ‘방화의 날’ 정해 훈련
주요문화재 인근 물저장시설 설치 의무화▼
일본은 1950년대부터 문화재 화재 피해를 막기 위한 국가 차원의 시스템 마련에 공을 들여 왔다.
올해로 54회째를 맞는 ‘문화재 방화(防火)의 날’이 대표적인 사례. 1955년부터 매년 1월 26일 대대적인 소방훈련을 실시한다. 1949년 같은 날짜에 나라(奈良) 현 이카루가(斑鳩) 정에 있는 호류(法隆)사 금당 화재로 국보인 금당벽화 대부분이 소실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훈련은 전국에서 이뤄지며 문화청과 소방청 장관이 직접 주요 현장을 시찰 감독한다.
문화재가 밀집된 지역인 교토(京都) 소방국은 1966년 ‘예방과’에 문화재계(係)를 별도로 설치했다. 900여 개 사찰을 포함한 문화재를 방화지도대상으로 지정해 화재를 예방하고 있다. 자위방위조직을 갖추고 이를 지도하는 것도 문화재계의 임무다.
화재를 막기 위한 첨단 방화시스템 도입도 눈에 띈다. 불이 문화재로 옮겨 붙는 걸 막는 ‘물 커튼’이 대표적. 문화재 주변에 설치된 분무기로 물을 뿜어 물안개가 일종의 커튼 역할을 하게 한다. 정전이나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자연유압을 이용하며, 어지간한 충격에는 손상되지 않도록 폴리에틸렌 파이프를 사용한다. 또한 국보와 중요문화재의 경우 소방차가 올 때까지 진압활동을 벌일 수 있도록 의무적으로 인근에 물을 저장해야 한다.
총 2328건(4210동)의 국보와 중요문화재 건조물 가운데 1950년 이후 화재 피해 사례는 모두 64건(67동)에 이른다. 이 가운데 문화재 관련 화재는 절반 이상이 방화 또는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었다. 2000년 5월에는 교토 잣코인(寂光院)에서 중요문화재 목존(木尊)이 방화로 피해를 봐 일본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중국
건물마다 연기 감지기… 전등 종류도 제한
불 끌때 훼손 우려 물대포 압력까지 조절▼
유서 깊은 목조 문화재가 많은 중국은 문화재 소방 분야에선 단연 선진국으로 꼽힌다. 특히 중국의 대표적인 문화재 쯔진청(紫禁城·일명 고궁·故宮)의 화재 예방 및 소방 체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가장 큰 특징은 고궁 내에 40여 명으로 구성된 화재 진압 전문 소방대가 따로 상주하고 있다는 점. 1975년 설치된 소방대는 24시간 내내 8704칸의 고궁 건물을 순찰하며 감시한다.
중국의 문물소방규칙에 따르면 문화재 건축물엔 60W(와트) 이하의 백열등만 사용할 수 있다. 불이 나기 쉬운 형광등과 수은등은 사용이 금지돼 있다. 문화재 내에서는 모두 금연이다.
고궁 내 모든 건축물에는 감시 카메라와 최신식 연기감지기가 설치돼 있다. 162개의 소화전과 1300여 개의 소화기도 비치돼 있다.
최근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수리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고궁에서 일하는 노무자들은 모두 분말소화기를 휴대해야 한다.
화재가 발생하면 고궁소방대는 2분 안에 현장에 도착하도록 ‘로드맵’이 마련돼 있다. 고궁 내 무장경찰과 보위부, 경찰, 관리 직원들의 대응 요령까지 상세히 규정돼 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화재 진화는 분말소화기 사용이 우선이다. 분말소화기로 진화가 힘들면 고압 소화전을 사용하되 화재 특성에 따라 물대포의 압력과 크기를 조절하도록 되어 있다.
1420년 명(明) 영락제(永樂帝) 때 완공된 쯔진청은 다음 해 정전(正殿)인 태화전(太和殿)을 비롯한 3대 전각이 불타는 등 청(淸) 말까지 40∼50차례의 큰 화재를 겪었다.
이에 따라 천장 중앙엔 부적 삼아 물을 의미하는 조정(藻井·해초 무늬가 있는 우물 모양의 장식)을 그려 넣었고 고궁 내엔 308개의 물 항아리를 두어 화재에 대비했다. 특히 겨울엔 항아리 밑에 불을 지펴 물이 얼지 않도록 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노르웨이
목조교회 400곳 선정 종합 소방체계 마련
나무 썩지 않도록 건식 스프링클러 설치▼
유럽에서도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석조건물이 발달한 나라와는 달리 노르웨이 등 북유럽은 동아시아와 마찬가지로 목조건물이 발달했다. 문화재도 목조건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1955년 베르겐 지역 전통 목조가옥의 거의 절반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대화재 이후 노르웨이 문화재청은 1960년대부터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보르군트, 우르네스 두 목조교회(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를 시작으로 1980년대까지 대부분의 목조교회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됐다.
1980년대 노르웨이 문화재청은 당대 최고 수준의 소방 컨설턴트에게 목조교회의 소방 관리를 맡겼다. 스프링클러보다 90%까지 물이 적게 요구되는 안개분무(water mist)식 소화 설비가 도입된 것은 이때부터다. 물이 목조가옥을 썩게 한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다락이나 탑 등 불이 순식간에 번져가는 곳의 진화에는 건식 스프링클러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1992년 방화범들이 베르겐 시 외곽 판트호트의 몇몇 목조교회에 불을 놓은 사건은 방화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목조교회에 집중적으로 열 탐지 장치와 감시 비디오가 설치됐다.
노르웨이 문화재청은 특히 1800년 이전에 지어진 400개의 목조교회를 택해 방화에 대비하는 소방 체계를 구축했다. 문화재와 소방서 간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해 소방대가 화재 탐지 이후 출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필요한 행인들의 긴급 소방 대책을 포함한 종합적인 소방 시스템을 마련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