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근처 토런스 시에 사는 존 스미스 씨. 2년 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주택을 구입한 그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모기지 금리가 오르면서 모기지 대출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기지 회사는 얼마 전 “원리금을 제때에 내지 못하면 주택을 차압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 편지를 보내왔다.
# 2008년 1월 중국 상하이
상하이에서 외국인 회사에 다니는 왕젠궈(王建國) 씨. 그도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한다. 친구들이 주식 투자로 큰돈을 버는 것을 보고 그는 지난해 11월 은행 대출로 주식 투자 대열에 합류했지만 올해 들어 중국 주식시장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중국 주식시장은 1월 한 달 동안에만 지난해 말에 비해 16.7%나 하락했다.》
○ 태평양 건너 온 ‘서브프라임 쇼크’
스미스 씨와 왕 씨는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두 사람의 고민엔 깊은 관련이 있다. 올해 들어 나타난 중국 주식시장 폭락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신용경색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즉 스미스 씨와 같은 미국인 수백만 명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은 태평양을 건너 왕 씨 같은 중국인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 달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과학이론처럼 미국발 나비효과가 전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올해 들어 1월 한 달 동안 뉴욕 증권시장에선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4.6% 하락했고 영국은 8.9%, 독일은 15.1%, 일본은 11.2% 주가가 하락했다.
○ ‘디커플링’ 주장 쏙 들어가
지난 2년간 세계 경제계와 투자업계의 화두는 디커플링(탈동조화)이었다. 중국과 인도의 경제가 충분히 성장한 만큼 과거와는 달리 미국 경제가 경기 하강 국면에 들어서도 전 세계 경제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디커플링 이야기는 쑥 들어갔다. 오히려 ‘미국이 기침을 하면 전 세계가 독감에 걸린다’는 ‘리커플링(재동조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증권시장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이미 미국발 경기 하강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미국 경제가 경기 하강 국면에 들어섰다는 징후가 본격화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성장률을 0.3%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월가 주요 투자회사들도 지난달 중국 일본 유로지역 등의 성장률을 모두 하향 조정했다. 그동안 ‘신흥시장 시대’의 도래를 강조했던 골드만삭스도 “2008년은 재동조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전 세계 주식-채권 40% 보유
미국의 인구는 3억 명으로 세계 인구의 4.5%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 규모는 명목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경제의 27%를 차지한다. 세계 수입시장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비중은 16%로 아시아와 유럽산 제품의 주요 소비자 역할을 한다.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은 최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미국 소비자들의 지난해 소비액은 9조5000억 달러로 중국과 인도 소비자들의 소비액을 합친 규모의 6배”라며 세계 경제가 미국의 경기 하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강조했다.
금융시장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더욱 막강하다. 2006년 말 기준으로 미국은 전 세계 주식 및 채권의 40%를 보유하고 있다. 올해 들어 월가 회사들이 신용경색 때문에 현금이 필요해지자 전 세계 증권시장에서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세계 주가가 폭락하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역내 교역량이 증가해 미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줄었다는 사실이다. 아시아 지역의 경우 대미 수출 비중이 2000년 21.3%에서 2006년에는 16.8%로 줄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나비효과: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 달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기상과학이론. 이 용어는 지구 어디에서인가 일어난 조그만 변화가 다른 지역에서 큰 변화를 가져올 때 사용된다.
:디커플링 (decoupling)
리커플링 (recoupling):
디커플링(탈동조화)이란 예전에는 세계 경제가 미국 경제와 같이 움직여 왔지만(커플링) 중국과 인도 등이 성장하면서 미국 경기가 둔화하더라도 다른 경제권은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이론. 리커플링(재동조화)은 최근 들어 세계 경제가 미국 경기하강의 영향으로 주춤하면서 주목받는 이론으로 미국 경제의 영향력이 여전히 크기 때문에 미국 경제가 하락세를 보이면 다른 지역 경제권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