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국가’에서 배운다]<3>‘성장동력 키우기’ 한마음

  • 입력 2008년 2월 23일 02시 59분


“하수도 물을 식수로”싱가포르의 하수도 정수시설인 ‘뉴 워터’. 물 수입 국가인 싱가포르는 가정이나 상가에서 버린 하수를 사람이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로 바꾸는 뉴 워터 공장 4곳을 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세계적인 물 부족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물 재생’이 미래형 산업이 될 것으로 보고 싱가포르가 ‘세계 물 허브’로 도약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사진 제공 싱가포르 공익사업청(PUB)
“하수도 물을 식수로”
싱가포르의 하수도 정수시설인 ‘뉴 워터’. 물 수입 국가인 싱가포르는 가정이나 상가에서 버린 하수를 사람이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로 바꾸는 뉴 워터 공장 4곳을 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세계적인 물 부족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물 재생’이 미래형 산업이 될 것으로 보고 싱가포르가 ‘세계 물 허브’로 도약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사진 제공 싱가포르 공익사업청(PUB)
외딴섬을 ‘재생에너지 메카’로덴마크의 섬 ‘삼쇠’에서 바라본 해상 풍력발전시설. 삼쇠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97년부터 화석연료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 시작해 현재는 섬 안에 필요한 모든 전기를 풍력발전에서 얻고 있다. 사진 제공 삼쇠에너지아카데미
외딴섬을 ‘재생에너지 메카’로
덴마크의 섬 ‘삼쇠’에서 바라본 해상 풍력발전시설. 삼쇠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97년부터 화석연료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 시작해 현재는 섬 안에 필요한 모든 전기를 풍력발전에서 얻고 있다. 사진 제공 삼쇠에너지아카데미
덴마크 “풍력발전 지원하자” 미래엔진 육성에 여야 없어

덴마크 유틀란트 반도 동쪽의 작은 섬 ‘삼쇠’. 인구 4000여 명의 이 작은 섬에 세계 각국의 장관, 학자, 시민단체 관계자가 매년 1000여 명씩 찾아온다. 국제 유가가 치솟아도 주민들은 걱정이 없다. 풍력 발전으로 전기를 자급하고 남는 것은 섬 밖에 판다. 난방은 식물이나 분뇨로 생산한 에너지인 바이오매스 또는 태양열로 충당하는 에너지 자급 지역이다.

덴마크 정부는 석유 값이 급등하기 훨씬 전인 1997년부터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미래 핵심 성장산업이 될것으로 보고 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정부의 비전이 오지의 섬을 세계 신재생 에너지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지 않는 국가는 없다. 하지만 구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기업형 국가’는 비전을 현실로 바꾸는 데 남다른 노하우가 있다. 기업형 국가의 정부는 최고의 정원사다. 정부가 직접 시장에 뛰어들어 승자와 패자를 가리기보다 세계 최고의 인재와 기업이 몰려와 번성할 수 있도록 정원을 가꾼다. 기업친화적인 생태계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 정부는 최고의 정원사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한국의 쌍용건설이 57층 호텔 3개동을 짓고 있는 이곳은 2010년경 미국 라스베이거스처럼 호텔, 카지노, 박물관, 극장 등이 들어서는 도심 복합 리조트로 탈바꿈한다.

싱가포르는 2001년부터 제조업 국가에서 지식산업 국가로 전환하기 위해 먼저 교육, 의료, 관광, 금융 허브로 성장하기 위한 기반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삶의 질을 높이고 놀거리를 마련해 세계인이 제 발로 찾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2005년 카지노 규제를 푼 것도 이 같은 성장의 비전 때문이다.

교육, 의료, 관광, 금융을 그 자체로 미래산업으로 키우고 이들 산업이 발전하면 최고의 환경이 함께 갖춰져 외국 인재와 외국 기업이 저절로 찾아온다는 생각이다. 공단을 만들고 세금만 깎아 주면 외국 기업이 몰려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국과는 전략이 다르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청은 최근 국제 민간항공운송협회, 세계야생동물협회(WWF)의 지역본부를 유치했다. 또 범부처 차원에서 국제적으로 명망이 있는 민간협회와 시민단체의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을 넘어 시민단체까지 유치하는 발상이 놀랍다.

○ 미래의 먹을거리 위해 당리당략도 초월

지난해 11월 덴마크 총선에서는 ‘풍력산업’이 주요 선거 쟁점이 됐다. 야당인 사민당이 집권 여당을 향해 “미래 성장엔진인 풍력산업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고 있다”고 포문을 연 것. 3선 연임에 성공한 집권여당의 아네르스 라스무센 총리는 “2020년까지 재생에너지 생산을 30% 확대하고, 풍력발전 산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육성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미래의 먹을거리 고민에 대해서는 당리당략도, 여야 구분도 없었던 것이다.

싱가포르 개발청 탄춘시안 국장은 “투자 유치나 미래 성장동력과 관련되면 경제부처는 교육부,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의 눈치를 보지 않고 기업에 교육 서비스와 세금 혜택 등을 제시할 수 있는 범부처 간 공조 체계가 확고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주식시장에 상장한 병원기업 파크웨이그룹의 체린지트 쿠마르 쇼리 부회장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는 환자가 닷새 만에 비자 수속을 마치고 싱가포르의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고 자랑했다. 비자를 받으려면 모스크바 주재 싱가포르대사관에 가는 게 원칙. 하지만 관계기관들의 공조를 통해 이 환자는 인터넷으로 비자 수속을 마치고 공항으로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의료산업을 성장동력으로 키우자는 목표에 외교부, 경찰, 이민국이 한몸처럼 뛴 것이다. 그 결과 한국으로 오는 의료 관광객은 연간 3만 명 남짓이지만 싱가포르는 40만 명을 유치하고 있다.

○ “대기업-외국인 투자만으론 안 된다”

기업형 국가는 하나같이 미니기업의 창업 천국이다. 대기업과 외국인 투자만으로 성장이 지속된다고 보지 않는다.

덴마크는 전체 기업의 10% 정도가 창업한 지 1년이 안 되는 신생 기업이다. 직원 3명이 연간 200만 달러를 버는 ‘셀바이오텍 유럽’의 소렌 톰센 사장은 “이틀 만에 회사 등록을 마쳤다”며 “1인 회사는 인터넷으로 1시간이면 창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일랜드는 생산성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을 돕는 ‘생산성 향상 펀드’, 상아탑의 알짜 연구결과가 창업으로 이어지도록 돕는 ‘상업화 펀드’ 등 창업을 북돋는 다양한 펀드가 있다. 작은 기업도 연구개발(R&D)에 나서면 두 손을 들고 환영한다. 육류 납품업체 ‘돈팜푸즈’는 정부 지원을 받아 ‘육류(肉類) 과학 R&D’ 센터를 지었다.

KOTRA 코펜하겐 무역관 선석기 관장은 “최고의 기술을 가진 토종 미니기업이 가장 소중한 씨앗이라는 생각이 사회 전체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이병기 경제부 차장 eye@donga.com

싱가포르=박용 기자 parky@donga.com

코펜하겐·올보르=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더블린=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법인세 올리면 나라 흔들려”

기업형 국가 “감세는 성장 촉진제”▼

“유럽연합(EU)이 우리더러 세금을 더 올리라고 하면…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아일랜드 KBC자산운용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이오인 파히 씨는 아일랜드의 법인세에 대해 설명하던 중 흥분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아일랜드의 법인세율은 12.5%. EU 평균 법인세율(약 25%)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과거에 금융 등 특정 산업분야에 10% 법인세율을 적용해 오다 EU의 압력으로 모든 업종에 12.5%의 단일세율을 적용하게 됐다.

아일랜드인들은 법인세 문제를 국가의 사활이 달린 문제로 생각한다. “너무 낮으니 높이라”는 EU의 압력을 받아들였다가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해외기업 유치에 차질이 빚어질까 염려한다. 산업은행 아일랜드 법인 옥상재 사장은 “아일랜드 정부는 EU에 모든 걸 다 양보하더라도 법인세 12.5%는 주권사항으로 반드시 지킨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업형 국가들은 세금을 분배의 측면보다 ‘미래 성장 동력에 대한 인센티브’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특징이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법인세율을 20%에서 18%로 낮췄다. 이달 15일에는 상속세 폐지 방침을 밝혔다. 기업을 유치할 뿐 아니라 세계적인 부호들의 자산을 끌어와 자산관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다. 당시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싱가포르 재무장관은 “외국인이 상속 대상 자산을 옮겨온다면 싱가포르 경제와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덴마크는 지난해부터 정부가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최고세율 60%의 소득세 때문에 고급인재의 해외 유출이 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2005년에는 1만9000여 명이 덴마크를 떠난 것으로 추산됐다. 자유당 연합정부는 고소득자에 대한 감세를 내용으로 하는 조세개혁안을 내고 세금 인하를 공약으로 내걸어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했다.

덴마크는 28%이던 법인세를 작년에 25%로 낮췄으며 향후 22% 수준으로 낮출 예정이다. 덴마크에 설립된 법인이 유럽 내 기업 활동의 지주회사 역할을 수행하면 자본금 도입이나 배당금의 송금에 대한 세금을 면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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