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서다
베이징에서 정보기술(IT) 기업에 다니는 장레이(張磊·31) 씨는 지난달 춘제(春節·중국 설날) 연휴를 틈타 태국 관광을 다녀왔다.
예전 같으면 평범한 중산층에게 해외 관광은 꿈도 꾸기 힘들었지만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장 씨처럼 해외에서 여가를 즐기는 보통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1978년 20만 명에 불과했던 중국의 해외 관광객은 2006년 3452만여 명으로 173배 가까이 증가했다.
중국인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물품이 자전거와 손목시계, 재봉틀이던 시절은 그야말로 옛날이야기가 됐다. 개혁개방이 많은 성과를 거둔 요즘 중국의 중산층은 자동차와 아파트를 장만한 뒤 외유에 나선다.
지난 30년간 중국이 이룩한 경제 업적은 경이로울 정도다. 1978년 3645억2000만 위안(약 2165억 달러)이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24조6619억 위안(잠정 추계)으로 15배(달러 기준)로 늘었다. 연평균 9.76%의 엄청난 성장 속도다.
1978년 224.3달러였던 1인당 GDP는 지난해 2458.6달러(잠정 추계)로 29년 만에 11배로 증가했다.
중국은 철강 시멘트 가전 등 170여 개 품목의 생산과 수출에서 세계 1위를 달린다. 시가 총액 기준 세계 10대 기업 순위엔 중국 기업이 5개나 올라 있다. 미국은 4개다.
○ 국제무대 영향력 갈수록 커져
덩샤오핑(鄧小平)과 장쩌민(江澤民) 시절 미국을 의식해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로 일관하던 과거와는 너무도 다르다. 중국은 이제 국제무대에서 할 일을 결코 피하지 않는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를 공공연하게 외치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지난해 10월 15일 열린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국은 앞으로 국제질서가 더욱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국제문제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른바 ‘신(新)시기의 외교정책’이다.
중국이 내정(內政)이라고 주장하는 대만과 티베트 문제에서 중국의 주장을 무시할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지난해 9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초청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중국의 압박에 5개월 만에 백기를 들었다.
미국도 북한 및 이란의 핵 문제와 미얀마 사태, 수단의 다르푸르 사태 등 굵직한 국제적 현안에서 중국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 중화주의 부활 가능할까
후 주석은 지난해 제17차 당 대회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자”고 10차례나 소리 높이 외쳤다.
올해 8월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이 ‘슈퍼 차이나’ 원년임을 선언하는 정치적 행사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중국은 국력을 과시하려는 듯 세계 각국의 원수들을 대거 올림픽 개막식에 초청했고 최근까지 참석을 통보한 나라는 60여 개국에 이른다.
중국의 경제력이 머지않아 세계 유일의 강대국인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예측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의 격월간 외교전문지인 ‘포린 폴리시’는 올해 1, 2월호에서 ‘구매력 평가(PPP)’ 기준으로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2020년 미국의 28조 달러보다 많은 30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경제력이 세계 1위라고 곧바로 패권국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군사력과 문화지배력에서 중국은 아직도 미국에 현저히 뒤진다.
중국은 최근 서방국가 사이에서 ‘중국위협론’이 급부상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문화전략을 강화했다. 중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 위해 2004년 11월 처음 세우기 시작한 공자학원은 지난달 현재 231개까지 늘었다.
중국전문가인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는 “최근 서방에서 대두되는 ‘팍스 시니카’는 중국위협론의 또 다른 변형된 형태로 볼 수 있다”며 “하지만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시대가 실현되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中 경제력 美의 25%… 따라잡기 쉽지 않아”▼
지난달 21일 중국국제문제연구소 1층 귀빈 접견실에서 만난 마전강(馬振岡·68·사진) 소장은 최근 세계 정치지도자와 학자들의 화두가 된 ‘팍스 시니카’의 현실성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마 소장은 “중국은 한 나라가 전 세계를 이끌어 가는 일극(一極)주의를 거부하고 여러 나라가 함께 협력해 가는 다극(多極)주의를 줄곧 주창해 왔다”며 “중국은 패권주의를 반대하며 세계 제1의 강대국이 되더라도 결코 미국을 대신해 패권을 행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중국이 미국의 경제력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중국이 이미 세계 2위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됐고 2010년이면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환율 기준으로는 여전히 미국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마 소장은 “개혁개방 30년 동안 중국 경제는 세계가 경탄할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고 인정했다. 마 소장은 1967년 외교부에 입문해 미국 등을 담당하는 미대사(美大司) 사장(司長)과 국무원 외사판공실 부주임, 외교부 대사 등을 거쳤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