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다]조선 전쟁과 베트남 전쟁…교과서 비교

  • 입력 2008년 3월 3일 15시 45분


1950년 10월에 조선 전쟁에서 미군과 싸우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는 중국 지원군. 같은 사진이 중국과 대만의 교과서에 실려 있다.
1950년 10월에 조선 전쟁에서 미군과 싸우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는 중국 지원군. 같은 사진이 중국과 대만의 교과서에 실려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직접, 간접적으로 말려든 조선 전쟁(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이 두 전쟁에 대해서 동아시아의 중학생들은 어떻게 배우고 있을까. 》

● 일본 - 최소한의 사실을 담담하게 기술

일본의 중학교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도쿄 서적(東京書籍)의 『새로운 사회 역사』에서는, 조선 전쟁에 대해서, 단독 항목으로서는 채택하지 않고 있다. 국제 연합의 성립과 냉전 등에 관해 기술하고 있는 ‘두 개의 세계와 아시아’란 2페이지 정도의 단원에서, ‘식민지 해방과 아시아’라는 항목 중에 7줄의 설명이 있을 뿐이다.

《조선은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습니다만,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북쪽은 소련에, 남쪽은 미국에 점령되었고, 1948년에는 북쪽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조선)이, 남쪽에 대한민국(한국)이 성립되었습니다. 1950년, 북한이 한국을 침공하면서 한국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연합군이 한국을, 중국 인민 의용군이 북조선을 각각 지원하며, 전쟁은 1953년 휴전 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학습 지도 요령의 개정으로 인해, 수업 시간 수가 줄어들어, 분량이 삭감된 점도 있지만, 최소한의 사실만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한편, 같은 출판사의 15년 전의 교과서에서는 같은 단원인 ‘두 개의 세계와 아시아’에 대해 7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었다. 국제 연합의 성립→아시아 등에서의 여러 민족의 독립→미국과 소련의 대립→두 개의 세계와 차가운 전쟁→한반도의 분열과 새로운 중국→점령 정책의 전환→한국 전쟁→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 의 순서로 항목을 설정하고 인과관계를 포함하여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었다.

와타나베 노리오(渡辺能理夫) 사회편집 부장은 “조선 전쟁과 일본과의 관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페이지를 할애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고교 입시 관계 상 최소한 알아둬야 할 것이 있으므로, 현재 교과서에서는 배경보다도 사실 관계만을 기술하는 경향이 있다. 전후 역사와 냉전 구조를 어떻게 취급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과제의 하나”라고 말한다.

베트남 전쟁도 현재의 교과서에서는 3줄로만 기술하고 있다. 15년 전의 교과서에서는 배경 설명을 포함해 약 1페이지 정도가 할애되었다.

오쿠보 마키(大久保真紀)

● 한국 - 전황을 포함한 3페이지에 걸친 상세한 설명

조선 전쟁에 대해, 한국에서는 6월 25일 발발한 전쟁이라 하여 ‘6•25 전쟁’이라 부르기도 하고, ‘한국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교과서에서는 ‘6•25 전쟁’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 세계사 분야의 『사회 2』와, 한국사를 취급하는 『국사』(국정교과서 1 종류) 양쪽 모두에서 취급하고 있는데, 당연한 일이지만 국사 쪽에서 전쟁의 원인에서부터 영향에 이르기까지를, 3페이지에 걸쳐서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북한’이란 북조선을 가리키고, ‘남한’은 한국을 말한다.

《북한 공산 정권은 소련과 비밀 군사 협정을 맺고 군사력을 증강하는 한편, 대한민국에 대한 무력 남침 준비를 서둘렀다.》

《북한은 (중략) 남한에 대해 평화 공세를 펴며 남침 의도를 숨기다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38 도선 전 지역에 걸쳐 남침을 감행하였다.》

그 후, UN군의 파병과 인천 상륙 작전에 의한 반격, ‘중공군’의 개입 등을 거쳐 1953년 휴전에 이르기까지를 지도를 사용해 가며 전황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 측만으로도 150만의 사상자를 냈으며 전쟁고아와 이산가족이 생겼고 국토가 황폐해 졌으며 경제 시설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한 후, 전쟁의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남북한 간에는 전쟁으로 인하여 적대 감정이 팽배하게 되었고, 그 결과 평화적인 통일보다는 대결의 국면으로 치닫는 민족의 비극이 확대되어 갔다.》

국사 편찬 위원회의 김득중(金得中) 박사는 “먼저 가르쳐야 할 사항은 전쟁은 북한에 의한 남침이었으며,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이다”고 말한다. 김 박사에 의하면, 1949년경부터 38 도선에서 많은 분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도 ‘북진 통일’을 주창했다는 사실들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지기는 했지만 “교과서에는 아직 반영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는, 국사 교과서에서 박정희 정권이 ‘베트남에 국군을 파병했다’라는 사실만이 1줄로 짧게 기술하고 있다.

사쿠라이 이즈미(桜井泉)

b>● 중국 - 조국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음을 강조

중국에서 반수 이상의 학교가 사용하고 있는 인민 교육 출판사의 『중국 역사』에서는 조선 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침략에 저항하고 북한을 원조하는 전쟁이라는 의미다. ‘중화인민 공화국의 성립과 확립’이라는 단원에서 5페이지가 할애되고 있다. 중국이 전쟁의 당사자였던 만큼 지도와 사진을 게재하는 이외에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기술로 시작된다.

《1950년 6월, 조선에서 내전이 발발했다. 미국은 곧바로 파병을 하여 조선을 침략했다. 미군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유엔군’은 ‘38도선’을 넘어 단번에 중국과의 국경인 압록강 부근까지 북진해 왔다. (중략) 미국 제7 함대는 중국의 대만 해협에 침입하여, 인민해방군의 대만 해방을 저지했다. 미국의 침략 활동은 중국의 안전에 있어서 중대한 위협이었다.》

중국 역사 교과서 전문가인 게이오 대학 또완뤼총(段瑞聡) 준교수는 “예전에는 미국 제국주의가 전쟁을 일으켰다고 가르쳤지만, 지금은 ‘내전이 발발했다’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분명히 변화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또한, 전쟁 참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조국을 지키기’위한 싸움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중국 정부에 파병 원조를 요청해 왔다. 미국에 저항하고 조선을 도와, 내 가정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 1950년 10월 펑더화이(彭徳懐) 를 사령관으로 하는 중국 인민 지원군이 조선 전선으로 향하여, 조선 군민과 함께 미국 침략자에게 반격을 가했다.》

한편,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는 『세계사』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다. 미군의 사진이 1장이 게재되어 있지만, 설명은 3줄 뿐이다. ‘미국은 1960년대 초부터 베트남을 침략했다. 베트남인들을 이용해 베트남 사람을 공격했고, 나아가서는 직접 출병까지 했지만, 실패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사토 가즈오(佐藤和雄)

● 대만 - 미국과 대만 관계 변화에 초점

대만 교과서에서는 조선 전쟁을 ‘한전(韓戰)’이라고 표현한다. 북조선을 북한, 한국을 남한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세계사, 중국사, 대만사 등 전 분야에 걸쳐서 다루고 있다. 한편, 베트남 전쟁은 세계사뿐이다.

널리 사용되고 있는 남일서국(南一書局)의 『국민 중학•사회』의 세계사 부분에서는 제2차 대전 후의 ‘지역 분쟁’이란 항목에서, 그림과 사진을 포함해 약 1페이지 정도를 조선 전쟁에 대해 할애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도 1페이지 정도로 다루고 있다. 조선 전쟁의 발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950년, 북한은 소련의 강력한 지시로 남한으로 진공했다. 유엔 안보리는 남한을 지원하기 위한 출병을 결의하고, 미국의 맥아더 장군이 총사령관이 되었다.》

또한, 대만사 부분에서는 4줄 정도로 다음과 같이 다루고 있다.

《정부를 대만으로 옮긴 당초 정세는 위기적이었지만, 한전의 발발로 미국은 함대를 파견하고 대만 해협의 공동 방위에 임하여, 정세는 점차 안정되었다. 1954년에는 중미 상호 방위조약을 맺어 중미 협력을 강화하였다.》

중국사 부분에서는 ‘중공 정권의 개황’이란 항목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 지원군’의 사진을 싣고, 3줄 정도로 다루고 있다.

국민당 정권 하인 1983년에 ‘역사 과정 표준’에 근거한 교과서에서는, 세계사에서 조선 전쟁에 대해 1페이지 크기의 지도를 싣고는 있지만, 설명은 극히 짧다.

남일서국(南一書局)의 교과서 편집 지도 위원인 초우호이민(周恵民) 정치대학 역사학부 교수는 “예전에는 대학생들도 한전에 대해 거의 몰랐다. 하지만, 한전은 중요한 사항으로, 전쟁이 없었다면 대만의 지위가 바뀌었을 지도 모른다”라고 하며, 채택하게 된 경위를 자세히 말해 주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는 《미국은 공산 세력이 동남아시아를 석권하는 것을 막으려고 베트남의 전장에 파병하여 개입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리저리로 도망치는 베트남 어린이들과 미국의 반전 데모 사진을 싣고 있다.

다무라 히로쓰구(田村宏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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