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악성 루머까지 두둔… 해도 너무한다”
'키친 싱크(kitchen sink·부엌 개수대) 정치'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끌어와 상대를 공격하는 행태를 뜻한다.
영어로 모든 게 포함됐다고 과장되게 강조할 때 '심지어 키친 싱크까지' 또는 '키친 싱크만 빼고 다'라고 말하는 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미국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마침내 미국 언론들이 '키친 싱크'란 표현을 붙이기 시작했다.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을 겨냥한 힐러리 후보의 공격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힐러리 캠프 대변인은 오바마 후보 측이 '힐러리 후보의 세금 공제 자료를 공개하라'고 요구한 데 대해 6일 "오바마가 켄 스타를 닮아간다"고 공격했다. 켄 스타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문인 르윈스키 스캔들을 수사한 특별검사다.
민주당 측에서 '클린턴 죽이기'를 떠올리는 1990년대 인물의 이름까지 들먹일 정도로 힐러리 캠프의 공격은 이슈와 분야를 불문한다. 연설문 표절 의혹, 부동산 개발업자 스캔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말 바꾸기, 외교안보 풋내기론….
특히 힐러리 후보가 지난 주말 TV에 출연해 "(오바마 후보가 이슬람교도라는 루머를) 믿는 건 아니겠죠?"라는 질문을 받고 한 대답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당시 힐러리 후보는 "아뇨(안 믿는다는 뜻), 내가 왜…. 아무 근거가 없잖아요"라고 대답한뒤 "내가 아는 한에서는(as far as I know)"이라고 덧붙였다. 터무니없는 루머에 대해 '내가 아는 한'이란 사족을 붙인 데 대해 논평가들 사이에서 '해도 너무 한다'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오바마 캠프도 힐러리 후보의 이라크전쟁 지지 경력, 세금 공제 자료 의혹 등을 거론하며 맞불을 놓으려 하지만 '때리기 싸움'에선 수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후보 간의 이런 치열한 공방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경선의 향배는 막상 예상치 못한 곳에서 판가름 날 공산이 커지고 있다.
당규를 어기고 1월 경선을 앞당겨 실시하는 바람에 경선 결과가 무효로 됐던 플로리다와 미시간 주에서 재경선을 치르자는 주장에 대해 6일 힐러리, 오바마 후보 진영 모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4일의 '제2차 슈퍼 화요일'에도 승부를 가리지 못한 열전 드라마의 마지막 관문으로 다음 달 22일의 펜실베이니아 주 경선이 주목돼 왔으나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큰 대회전이 벌어질 수도 있게 됐다.
미시간과 플로리다는 예년보다 일정을 앞당겨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1월 15일과 29일 각각 치렀지만 민주당은 당규를 어겼다는 이유로 경선 전에 이미 이들 주(州)의 전당대회 참가와 대의원 자격을 박탈했다. 그러나 두 곳의 정치인들은 그동안 "우리의 민심을 반영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해왔다.
힐러리 후보는 6일 기자들과 만나 "두 주의 지도자들이 가장 좋은 접근법을 찾도록 하겠다"며 열린 자세를 보였다. 오바마 후보도 이날 밤 ABC뉴스 인터뷰에서 "어떻게 해결할지 결정을 당 전국위원회에 맡긴다. 나는 두 주의 대의원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전당대회에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두 주에 배정된 대의원은 366석. 한쪽이 압승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이곳에서의 승패는 8월 전당대회에서 공식 후보 선정의 열쇠를 쥘 것으로 보이는 특별대의원들에게 "이게 최종 민심이다"라는 판단을 줄 결정적 근거가 될 수 있다.
두 주 관계자들은 5일 만나 재선거 방안을 협의했는데 현재 난관은 비용이다.
플로리다는 2500만 달러, 미시건은 1000만 달러 이상이 들 것으로 보이는데 하워드 딘 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은 "두 주가 알아서 해결하라. 중앙에선 도와줄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후보들이 전혀 선거운동을 하지 않은 채 치러진 1월 플로리다 경선에서는 힐러리 후보가 50%, 오바마 후보가 33%를 득표했다. 투표용지에 힐러리 후보만 등재된 미시간에서는 그가 55%를 득표했다.
힐러리 캠프가 재경선을 하는데 적극적인 것은 "현재 표심의 변화 추이가 유리하다"는 판단과 "격차를 좁힐 수 있는 2번의 기회를 더 가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재경선 없이 그냥 50%대 50%로 대의원을 배분해 전당대회 참가 자격을 주자'는 주장을 해 온 오바마 캠프는 현재 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판단 때문에 조금은 더 조심스러운 태도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