恨 못풀고 간 위안부 할머니 마지막 길 지킨 일본 청년들

  • 입력 2008년 3월 8일 02시 52분


7일 세상을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필기 할머니의 영정을 할머니 여동생의 손자인 정현철 씨가 들고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나눔의 집을 나서고 있다. 광주=로이터 연합뉴스
7일 세상을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필기 할머니의 영정을 할머니 여동생의 손자인 정현철 씨가 들고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나눔의 집을 나서고 있다. 광주=로이터 연합뉴스
문필기 할머니 영결식… 자원봉사 日유학생 “저희가 죄송스러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필기(82) 할머니의 영결식이 7일 경기 광주시 광주장례식장에서 열렸다.

1943년 위안부로 강제 동원됐던 문 할머니는 2003년 10월부터 나눔의 집에서 살다가 5일 세상을 떠났다.

문 할머니는 결혼을 하지 않아 혈육이라곤 여동생 1명뿐이다. 하지만 영결식장은 유족 대신 조문객을 맞는 젊은이들로 붐볐다.

일본인 유학생과 시민운동가 등 30여 명도 눈에 띄었다. 어학연수나 유학차 한국에 왔다가 나눔의 집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평소에도 나눔의 집을 정기적으로 찾아 할머니들을 위로했다. 또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증언 집회를 여는 등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해 왔다.

이들은 문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듣고 사흘간 교대로 빈소를 지켰다. 영결식장에서는 조문객을 안내하고 다른 위안부 할머니의 거동을 도왔다.

일본인 대표로 추도사를 한 무라야마 잇페이(村山一兵) 씨는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 중일 때 찾아가면 항상 ‘일본이 사죄했느냐’며 관심을 놓은 적이 없었는데 가슴이 아프다. 항상 손자처럼 잘 대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잇페이 씨는 2003년 연세대에 유학 왔다가 나눔의 집을 방문한 뒤 일본에 돌아가지 않고 위안부역사관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문 할머니의 장례식 뒤 이날 오후 위안부 증언 집회를 위해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로 떠났다.

또 다른 일본인 유학생은 “일본 젊은이들이 찾아올 때마다 할머니들이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며 “손을 잡아주며 너희들만 믿는다고 반겨준 할머니들께 너무 죄송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눔의 집 안신권(46) 사무국장은 “문 할머니가 성격이 밝고 정이 많아 일본 학생들이 많이 따랐다”며 “마지막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할머니의 별세로 나눔의 집에는 김군자(82) 할머니 등 7명이 남았다.

광주=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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