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확보’ 앞엔 적도 동지도 없다

  • 입력 2008년 3월 27일 03시 01분


러시아가 향후 2년간 유럽에 수출하기로 계약한 천연가스를 제대로 공급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왔다. 천연가스 소비량의 25%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유럽 국가에서는 대체 수입처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유럽 국가 간 동맹관계도 에너지 문제로 금이 가고 있다.

▽러시아발 천연가스 수급 불안론=국제에너지기구(IEA) 등 에너지 분석기관들은 최근 “러시아의 내수용 천연가스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는 반면 가스 생산과 수출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지난해 러시아 천연가스 생산량은 전년도보다 1.4% 줄었다.

러시아는 올해 생산량을 2.3% 늘리고 유럽 수출량도 매년 3∼4%씩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유럽 전문가들은 “오래된 러시아 유전에서 채굴되는 가스는 갈수록 줄어들고 가스프롬과 같은 대형 러시아 가스회사는 새로운 유전에 대한 투자를 미루고 있다”고 진단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출의 최대 복병은 급격히 증가한 러시아 내의 에너지 소비량이다. 러시아 일부 지방은 지난해 11월 천연가스 부족 사태를 맞기도 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러시아는 2010년까지 유럽에 계약 물량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IEA의 전망이다. 또 가스프롬이 새로운 유전 개발을 위해 매년 110억 달러를 투자하지 않으면 2015년경 러시아의 가스 수출은 25%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표변하는 에너지 동맹=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 전 폴란드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와 독일 합작기업인 노드스트림의 독일-러시아 가스관 건설계획을 1940년 히틀러의 하수인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와 스탈린의 심복 뱌체슬라프 몰로토프가 맺은 독소 불가침 조약에 비유했다. 독일이 자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 독-러 간 직수입용 가스관을 건설함으로써 유럽 동맹 국가들을 제쳐두고 천연가스를 독식하려 한다는 비난이다.

지금까지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나눠 썼던 벨로루시 폴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이를 저지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러시아의 형제국가였던 벨로루시는 ‘노드 스트림’ 가스관이 건설되기 전에 가스 중계 요금을 대폭 올리겠다며 러시아에 으름장을 놓았다. 유럽연합(EU) 가입으로 독일과 더욱 가깝게 지냈던 발트 해 연안 국가들도 노드스트림 가스관이 지나가는 구역에 대한 지반 조사와 공사에 협조하지 못하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러시아 남부 카스피 해와 흑해 연안에서 가스를 끌어 오기로 합의했던 유럽 국가들의 동맹관계도 흔들리고 있다. 터키 루마니아 헝가리 오스트리아는 2006년 6월 중앙아시아의 가스를 직수입하기 위해 나부코 가스관 건설계획에 합의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올해 3월 흑해 해저를 통해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보내겠다는 ‘사우스 스트림’ 프로젝트를 내놓자 루마니아와 헝가리는 나부코를 떠나 러시아 편에 섰다.

터키의 가스 전문가 오구즈 코세발라반 씨는 “한때 러시아에 등을 돌렸던 유럽 국가들도 러시아와 새로운 이면 계약을 맺고 있다”며 “에너지 자원 앞에선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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