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 16세는 이날 오후 4시 워싱턴 근교의 메릴랜드 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해 마중 나온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인 로라 여사, 딸 제나 씨와 손을 맞잡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부시 대통령이 공항에 영접을 나간 것은 처음이다.
‘셰퍼드(목자·牧者) 원’이라고 이름 붙여진 알리탈리아항공 특별기 편으로 도착한 베네딕토 16세는 환영객 800여 명에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외국에 도착하면 흔히 땅에 입을 맞추던 요한 바오로 2세와 달리 한 손을 가볍게 흔들어 환영객들의 열광적인 환호에 답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워싱턴 시내 매사추세츠 가에 있는 바티칸대사관에 여장을 풀었다.
워싱턴 시 당국은 이날 오후 5시부터 16일 오전 9시까지 교황의 자동차 행렬이 통과하는 매사추세츠 가와 백악관으로 이어지는 펜실베이니아 가의 자동차 주차를 금지시켰다. 바티칸대사관 주변의 교통도 통제해 교황의 안전에 만전을 기했다.
공식 환영식은 16일 오전 10시 반 백악관 남쪽 뜰에서 9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베네딕토 16세와 부시 대통령은 곧이어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담을 한 뒤 백악관 남쪽 뜰부터 펜실베이니아 가까지 방탄 자동차로 이동하며 군중에게 인사와 축복을 보냈다.
베네딕토 16세는 17일엔 내셔널파크 야구장에서 4만7000여 명이 참석하는 군중 미사를 집전하며 오후에는 미국 내 타 종교 지도자들과 종교 간 대화를 개최한다.
이에 앞서 베네딕토 16세는 15일 이탈리아 로마를 떠나 워싱턴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2002년 이후 불거진 미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문제에 대해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deeply ashamed)”고 사과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성직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검증 작업을 강화해 아동 성도착자를 성직에서 단호히 배제할 것”이라며 “많은 성직자보다는 좋은 성직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성직자 성추행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한 단체를 이끄는 데이비드 클로헤시 씨는 15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교황은 어린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과 기회를 갖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이 10∼13일 미국의 성인 1197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전체 응답자의 73%는 ‘가톨릭교회의 아동 성추행 문제 대처가 부적절했다’고 답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