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미국 뉴저지 주 하켄색의 부동산 컨설팅 및 투자회사인 유나이티드 펀딩 컨설팅 사무실. 뉴욕 맨해튼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사무실에는 상담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대부분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집을 구입했다가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해 살던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빠진 한인들이었다. 이 회사의 제이 한 대표는 “최근 주택 압류에 들어간 한인 소유 주택이 급증하면서 상담전화가 부쩍 늘었다”며 “절망에 빠진 나머지 자살을 시도하거나 이혼 직전까지 간 한인도 많다”고 전했다.》
○ 부메랑 돼 돌아온 ‘묻지마 투자’
부동산 경기가 좋았을 때 한인 교포사회에선 과감한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성공스토리가 넘쳐났다. 그러나 최근 미국 주택경기가 침체에 빠지면서 ‘과감한’ 부동산 투자가 이제는 부메랑으로 작용하고 있다.
뉴저지 주 포트리에 살고 있는 박모 씨. 그는 미국 주택경기가 정점이던 2005∼2006년에 주택 4채를 구입했다. 당시 4채 구입가격이 모두 250만 달러(약 25억 원)에 달했지만 그가 실제 지불한 금액은 10만 달러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금융회사에서 모기지 대출을 받아서 해결했다. 집값이 오르면 적당한 시점에 팔아서 차익을 남기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주택경기가 하락하면서 문제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운영하던 식당마저 매출이 부진해 지난해 10월부터는 모기지 원리금을 내는 게 불가능해졌다. 이후 은행에서 주택압류 통지가 왔고 조만간 4채 모두 경매에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차익 실현은커녕 그동안 납부한 모기지 원리금을 한 푼도 건지지 못할 듯하다.
○ 경매 물량 1년새 50% 는 지역도
압류주택의 최종 정착지인 법원경매장에 나오는 한인 소유 주택도 늘고 있다.
매주 금요일 하켄색의 법원에서 실시되는 경매물건을 중개하는 이준 씨는 “전에는 한인 소유 주택이 법원경매에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에는 꼭 한두 건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로스앤젤레스 등 남캘리포니아 일대의 주택 경매시장에도 한인 소유 주택이 넘쳐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김희영부동산이 자체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로스앤젤레스, 리버사이드, 샌버나디노 등 남캘리포니아 6개 카운티에서 올해 2월 경매로 넘어간 한인 소유 주택 건수가 모두 306건에 달한다. 1년 전보다 50% 이상 늘어난 수치다.
○ 대출액이 더 많은 ‘깡통주택’ 속출
한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직접적인 이유는 미국 주택경기에 있지만 한인들이 그동안 ‘묻지마식 투자’로 주택을 몇 채씩 구입한 것도 사태를 악화시킨 요인이다.
김희영 씨는 “한인들의 주택압류 물건을 분석해보면 집주인의 50%가 주택을 2채 이상 구입한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많게는 주택을 7채 이상 투자 목적으로 구입했다가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고 현지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전한다.
이와 함께 한인 상당수가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자영업에 종사하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주택을 담보로 추가대출을 받은 상황에서 가게 매출마저 줄어들면 원리금 부담이 천문학적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대출금이 많아지면서 주택의 실제 가격보다 대출금이 더 많은 ‘깡통주택’도 많아지고 있다.
○ 상투 잡은 한국發 원정투자자도
한국 정부의 해외투자 규제 완화 바람을 타고 2006년 말 로스앤젤레스 근처 주택을 투자 목적으로 70만 달러에 산 김모 씨는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2년도 되지 않아 집값이 60만 달러 아래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한편 요즘 미 주택시장이 바닥에 근접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를 저가매수의 기회로 삼으려는 한국인도 나타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솔로몬부동산의 크리스 엄 대표는 “요즘 압류 직전 단계의 주택들은 시가보다 10∼20%까지 싸게 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한국에서 문의전화가 제법 걸려오고, 실제 거래가 이뤄진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