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100년 기업’을 가다]<24>주류 제조업체 산토리

  • 입력 2008년 4월 25일 02시 56분


“실패는 성공의 약” 45년 적자도 이겼다

《을씨년스러운 봄비가 하루 종일 흩뿌린 19일 도쿄(東京) 미나토(港) 구 산토리홀. 오후 5시 반 개장을 알리는 음악이 울려 퍼지자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이 일제히 입구로 몰려들었다. 홀 안팎에는 턱시도와 정장을 차려입은 직원 30여 명이 미소 띤 얼굴로 이들을 안내했다. 직원들의 몸에 밴 서비스 태도는 물론 실내장식의 고급스러움과 청소 상태 등도 콘서트홀이라기보다는 특급호텔에 가까웠다. 메인홀 곳곳에 배치된 안내 요원들은 연주회가 진행되는 동안 불편을 느끼는 고객이 없는지 주의 깊게 지켜봤다.》

“눈앞 흑자 연연말라” 적자부문서 되레 투자늘려

“소비자-사회와 함께 가야”… 이익 삼분주의 실천

○ 이익의 3분의 1은 사회를 위해

핫탄다 히로시(八反田弘) 수석 코디네이터는 “산토리홀은 단순히 음악만 즐기는 콘서트홀이 아니라 고객이 산토리의 서비스를 만나는 곳”이라면서 “서비스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안내 직원만 120명이 (교대로) 근무한다”고 말했다.

2006석 규모의 메인홀에 장애인을 위한 특수주문 좌석까지 설치하는 등 소수자 배려에도 빈틈이 없었다.

산토리가 심혈을 기울여 운영하는 산토리홀은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클래식음악 전문 콘서트홀이다.

산토리는 1980년대 중반 ‘세계 최고’를 목표로 수익금을 아낌없이 쏟아 부어 이곳을 지었다. 산토리의 열정에 감복한 세계적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건설회사 연구소까지 직접 찾아가 계단 배치 등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홀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악기라는 평가를 받는 산토리홀에는 일본 국내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연주회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메인홀의 경우 연간 연주회가 350회나 열린다.

후쿠모토 도모미 부지배인은 “시설과 서비스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이처럼 많은 연주회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면서 “산토리의 이익삼분(三分)주의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익삼분주의란 기업이 번 돈 중 3분의 1은 소비자를 위해, 3분의 1은 사회를 위해 쓴다는 발상. 산토리는 이 정신에 따라 미술관, 박물관, 음악재단, 문화재단 등도 운영하고 있다.

○ 선전의 산토리

메세나(문화예술 지원)와 함께 산토리를 대표하는 트레이드마크는 ‘광고마케팅’이다.

가이코 다케시(開高健), 야마구치 히토미(山口瞳) 씨는 일본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을 각각 받은 소설가다.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산토리 선전부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쟁쟁한 인재가 포진한 산토리 선전부는 일본 광고사(史)에 남는 명작 CF를 수도 없이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것이 위스키 ‘올드’의 광고. 일본에서 위스키 붐이 일기 시작한 1960년대 후반 산토리는 올드의 상승세에 탄력을 붙이기 위해 전통요리점에 위스키를 보급하는 ‘젓가락 작전’을 전개했다.

하지만 ‘일본 요리에는 일본 술(청주)’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한 현실에서 ‘젓가락’(전통요리)과 ‘위스키’의 이미지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것은 어려운 숙제였다.

이 난제를 단번에 해결한 것이 1970년에 내놓은 신문광고였다. 초밥집 주인이 가게 문을 닫은 뒤 혼자 카운터에 앉아 올드를 마시는 모습을 담은 광고는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70년 100만 상자였던 올드의 판매량은 1974년 500만 상자, 1978년에는 1000만 상자로 급증했다. 1980년에는 단일 위스키 브랜드 연간 최대 판매기록인 1240만 상자(1억4400만 병)를 넘어섰다.

○ “40년 적자쯤이야”

산토리의 109년 역사가 올드와 같은 성공 상품의 이야기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1963년 발을 디딘 맥주사업은 지난해까지 45년간 적자를 냈다.

“올드가 그렇게 많이 팔릴 줄 몰랐고, 맥주가 그렇게 안 팔릴 줄 몰랐다”는 말을 자주했던 사지 게이조(佐冶敬三) 전 사장은 맥주가 흑자를 내는 것을 단 한 번도 못 본 채 1999년 눈을 감았다.

오너 일가의 비원이 서린 맥주사업에 처음으로 흑자의 싹이 보인 것은 2006년. 2003년 발매한 ‘더 프리미엄 몰츠’가 세계적 주류 콘테스트인 몬도셀렉션에서 2005년, 2006년 연속 맥주 부문 최고금상을 수상하면서 비약적인 판매량 증가를 보였다.

맥주 부문 임직원들은 40년 숙원을 풀게 됐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지만 의외의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너 겸 최고경영자인 사지 노부타다(佐冶信忠) 회장이 “눈앞의 흑자에 연연하지 말고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투자를 늘리라”고 지시한 것.

결국 투자를 늘리다 보니 흑자 전환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 실패의 교훈이 ‘대박’을 낳다

산토리의 경영진은 적자에 의연한 만큼이나 실패에 대해서도 대범하다.

산토리가 맥주만큼 쓴맛을 본 상품이 녹차음료다. 1993년 ‘산토리녹차’를 시작으로 3년이 멀다 하고 신제품을 내놨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심지어 2001년에는 ‘녹차의 저주’를 벗어나기 위해 ‘주쿠차(熟茶)’라는 발효차까지 내놨지만 결과는 산토리 청량음표 판매 사상 최악의 실패였다.

다른 회사 같으면 상품개발 담당자들이 모두 바뀌고도 남을 일이었다. 하지만 산토리 경영진은 그 팀에 다시 신상품 개발을 맡겼다.

이 팀은 ‘후쿠주엔’이라는 녹차 전문 제조업체와 손을 잡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2004년 3월 16일 신제품 ‘이에몬’을 시장에 선보였다.

산토리가 500mL 제품의 첫 달 판매량으로 예상한 50만 상자(24병 들이)는 3일 만에 동이 났다. 이에몬은 연말까지 무려 3420만 상자가 팔리면서 청량음료 신상품 발매 첫해 최다 판매기록을 갈아 치웠다.

이듬해에는 판매량 5000만 상자를 돌파했다.

일본의 청량음료 판매 역사에서 연간 판매량이 5000만 상자를 넘어선 브랜드는 ‘포카리스웨트’와 ‘아쿠아리스’ 등 8가지에 불과하다. 더구나 2000년 이후에는 이에몬이 유일하다.

니와 도루(丹羽徹) 산토리 홍보부 과장은 “이에몬이 성공한 것은 실패의 교훈을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맥주 부문에서 고전한 것도 올드의 성공에 도취해 나태해지기 쉬웠던 영업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약이 됐다”고 말했다.

산토리그룹 개요
구분내용
창업연도1899년
연간 매출액1조4948억 엔(약 14조3650억 원)
부문별 매출액식품부문 8309억 엔, 주류부문 5352억 엔, 기타 1287억 엔
종업원2만790명
경영체제비상장 가족경영
본사소재지오사카 시 기타 구
홈페이지www.suntory.co.jp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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