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보다 납기 맞추는게 우선” 공장가동 늘어
노동절 연휴가 시작된 1일 오후 모스크바에서 동북쪽으로 320km 떨어진 이바노보 시의 중심가 레닌 거리. 사회주의 혁명 당시 러시아 역사상 최초로 ‘노동자 소비에트’가 결성된 곳이다.
사회주의 시대부터 이어진 노동절 휴일이 시작됐지만 거리에는 휴가를 떠나지 않은 근로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직물회사에 다니는 마리야 니콜라예브나(35·여) 씨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오전까지 공장에서 일하고 오후에야 시내로 나왔다”고 말했다.
근로자들은 “수십만 명이 중심가에 모여 ‘평화 노동 그리고 5월’을 외치던 사회주의 풍습은 2000년 이후 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휴가보다 납기가 우선=올해 러시아 노동절 법정 공휴일은 1일부터 3일까지였다. 대규모 사업장들은 직원들에게 이보다 길게 4, 5일 휴가를 주었지만 일부 근로자들은 휴가를 반납하고 일터를 찾았다. 또 직원들끼리 조를 나누어 휴가의 절반은 쉬고 절반은 교대로 나와 작업장을 지키는 경우도 있었다.
연휴 이틀째인 2일 이바노보에서 북쪽으로 100km 떨어진 코스트로마 시내 중심가에 있는 ‘5월 1일 거리’. 사회주의 시절 세워진 레닌 동상이 첫눈에 들어왔다. 옛 소련 붕괴 후 이 거리에 새로 들어선 목재 가공공장 굴뚝에는 오전 8시부터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침 일찍 출근한 세르게이 페도로프(50) 씨는 “공장장은 ‘노동법을 지켜야 하니 휴가를 가라’고 강요했지만 직원의 3분의 1은 일터에 남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게차를 운전하던 드미트리 오를로프(43) 씨는 “휴일에도 원목 주문이 밀려와 직원들이 ‘납기를 맞추는 것이 휴가보다 훨씬 중요하다’며 공장장을 설득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 듯 인테르팍스통신은 “노동절 휴일을 늘리는 법안이 의회에 상정됐지만 법안 통과 전망이 밝지 않다”고 2일 보도했다.
▽한산한 노동절 시위=2일 오후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240km 달려 야로슬라블 시에 도착했다. 이 도시 도심의 대형 공장 주변에서는 전날 노동절 시위가 벌어졌다.
알료나 오를로바(65·여) 씨는 “옛 소련 시절 노동절 거리 시위는 5월 축제를 여는 연례행사였다”며 “나이 든 근로자들은 그런 축제를 그리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지역 직업연맹 본부에서 일하는 미하일 슈마노프 씨는 “정치 문제에 염증을 느끼는 근로자들이 많고, 노동절이면 사회주의 시절처럼 붉은 깃발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근로자도 이 때문에 크게 줄었다”고 전했다.
그는 “휴일에도 교대 근무에 들어가는 근로자들은 노동절 도심 대규모 시위를 ‘관료주의에 절어 있는 공산당 당원의 배부른 사치’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노동절 시위 때 나오는 구호들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도심 시위를 주도하던 각종 사회단체들은 이념색 짙은 정치 집회가 일반 근로자들에게 먹혀들지 않자 서민 경제와 관련된 주제를 들고 나왔다. 연금 지급액을 인상하라거나 물가 인상률을 낮춰 달라는 요구들이었다. 그나마 시위 참가자들은 눈에 띄게 줄어드는 추세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