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도시의 미래다]<상>스페인 구겐하임 미술관

  • 입력 2008년 5월 6일 03시 00분


실업률 10분의 1로 낮춘 ‘구겐하임 기적’

《디자인을 통해 서울을 ‘명품 도시’로 만들려는 자치구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양대웅 구로구청장과 추재엽 양천구청장을 비롯한 서울시 서남권 자치구 디자인 체험단은 4월 16일부터 9박 11일 일정으로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을 순회하면서 선진 디자인 현장을 둘러봤다. 체험단과 함께 봤던 모범 사례를 상하 편으로 나눠 소개한다.》

스페인 북부 비스카야 주의 주도(主都)인 빌바오 시는 ‘구겐하임 미술관’(사진)의 도시다. 시 인구는 약 35만 명이지만 미술관을 찾는 사람은 연간 100만 명이 넘는다.

미술관은 1997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티타늄과 유리, 석회암을 주재료로 만들어 아침이면 온통 황금빛으로 빛난다.

티타늄 조각은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며 네르비온 강가에 반사된다. 주변은 산책로와 공원, 어린이 놀이터. 미술관 주변에서 산책하거나 책을 읽는 시민의 모습이 여유롭기만 하다.

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캐나다 출신 미국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 씨. 직선은 거의 찾기 힘들다. 꽃잎처럼 이리저리 휘어진 모양이어서 별명이 메탈 플라워(금속 꽃)다.

크기와 모양이 다른 19개의 전시장을 갖췄다. 소장품이나 전시품보다 미술관 건물을 보러 오는 사람이 더 많다.

개장시간인 오전 10시가 되기 전에 미술관 주변은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다. 수학여행을 온 미국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건축 공부를 하러 온 오스트리아 대학생들도 있다.

○ 공장 창고를 무료로 제공

빌바오는 1850년대부터 공업도시로 번창했던 곳이다. 현재까지도 네르비온 강 양편으로 조선소와 철강 공장이 늘어서 있다.

1980년대 이들 산업이 쇠퇴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공장지대는 폐허가 됐고 직장을 잃은 사람은 시위대로 변했다.

빌바오 시와 비스카야 주정부, 바스크 지방 정부는 미래 도시가 살 수 있는 길은 ‘문화 도시’라고 결론 내렸다.

이들은 민간과 합심해 죽어가는 네르비온 강을 되살리고 빌바오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되살리기로 했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분원을 유치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빌바오 시는 공장 창고였던 미술관 용지 2만2000m²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1억3200만 유로(약 2064억 원)에 이르는 비용도 모두 부담했다.

처음에는 위험한 도박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요즘 구겐하임 미술관은 도시의 자부심이 됐다.

시민 리디아 코바스(27) 씨는 “어릴 적만 해도 빌바오는 더럽고 보기 싫은 도시였다. 하지만 요즘은 누구나 빌바오를 꼭 한 번 찾아보고 싶어 한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구겐하임 효과 덕분에 한때 30%에 육박했던 빌바오의 실업률은 지난해 말 현재 3.4%로 줄었다. 물고기가 살지 않던 네르비온 강에는 호화 크루즈선이 대서양을 통해 오가고 있다.

○ 지하철역-다리도 유명건축가 작품

많은 시민은 구겐하임이 빌바오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쾌적하고 깨끗한 도시 곳곳에는 세계적인 유명 건축가의 손길이 묻어 있다.

시내를 관통하는 지하철의 모든 역 건물은 영국 출신 건축가 노먼 포스터 씨가 디자인했다. 강 건너편에서 구겐하임 미술관 방향으로 이어지는 보행자 전용 다리인 수비수리 다리는 스페인 출신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씨가 설계했다. 다리 주변 쌍둥이 주상복합 건물은 일본 건축가 아라타 이소자키 씨의 작품이다. 2012년 시 외곽에 들어서는 고속전철 건물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의 설계자로 선정된 자하 하디드 씨가 만든다.

빌바오 시는 네르비온 강 양편에 남아 있는 공장 건물을 세계적인 건축물로 계속 리모델링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시의 일정 구역을 ‘스페인의 맨해튼’ 같은 금융 중심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빌바오 시의 변신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빌바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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