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버스 등 이용 늘자 교통정체는 줄어들어
소형차 판매 급증… 가전제품 살때도 효율 따져
‘5% 대 25%’.
에너지 고(高)소비 국가인 미국을 이야기할 때 자주 나오는 숫자다. 미국의 인구는 약 3억 명. 전 세계 인구의 5%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석유를 포함한 전 세계 에너지의 25%를 쓰고 있다.
그만큼 미국에선 ‘에너지 절약’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다. 하지만 고유가가 남의 일만은 아니다. 이제 미국에서도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 미국인도 대중교통 이용
12일 뉴욕 맨해튼 42번가.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버스 정류장에선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다.
뉴욕에 인접한 뉴저지 주에서 맨해튼으로 출근하는 스티븐 그레이엄 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집 근처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42번가 버스터미널에서 내린 뒤 뉴욕 시가 운영하는 공영버스를 타고 직장인 유엔까지 간다.
그레이엄 씨는 “이전엔 출퇴근을 위해 매일 60마일(약 96km)을 운전했는데 가솔린 가격이 오르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며 “기름값뿐만 아니라 통행료도 절약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뉴욕을 중심으로 버스와 경전철 등 뉴욕교통공사(MTA)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출퇴근 승객이 올해 1분기(1∼3월) 동안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 늘었다. 1, 2월 두 달 동안 뉴욕 지하철 이용승객도 6.8%나 증가했다.
미국 다른 지역의 대중교통 이용객 증가폭은 더욱 가파르다. 마이애미에선 올해 1분기 통근용 경전철을 이용한 승객이 89만56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 증가했다.
이처럼 대중교통 이용이 증가하면서 대도시 주변의 교통정체 현상도 완화되고 있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주변 도로는 차량 통행이 줄면서 출퇴근 시간대 정체현상이 다소 개선되고 있을 정도다.
○ 경차(輕車) 구입하고 냉장고 전기효율 확인하고…
미국 도로에는 배기량 4000cc가 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들로 넘쳐난다. 그만큼 미국인들은 ‘큰 차’를 선호한다.
그러나 요즘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차량은 전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소형차다. 올해 들어 포커스, 피트, 야리스 등 소형차 판매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기아자동차는 지난달 리오(23.6%) 스펙트라(16.7%)의 판매 증가에 힘입어 모두 3만66대를 팔아 한 달 기준 판매량으로는 최고 기록을 세웠다. 미국인들이 연료소비효율이 좋은 소형차량을 찾기 시작하면서 요즘 공항의 대형 렌터카 업체에서는 스펙트라가 유독 눈에 많이 띈다.
최근 미국 주유소의 가솔린 가격은 갤런(3.78L)당 4달러에 육박한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여전히 싼 편이지만, 3년 전까지만 해도 갤런당 2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비싸다.
가전제품을 살 때 전기효율을 확인하는 것도 미국인들의 달라진 모습이다. 윤태봉 LG전자 북미법인 부장은 “이젠 미국인도 냉장고처럼 24시간 틀어놓는 가전제품을 살 때 에너지 효율등급을 꼭 확인하기 때문에 가전 업체들도 에너지 효율등급을 마케팅에 활용한다”고 말했다.
○ 2014년까지 백열전구 퇴출한다
정치권도 에너지 절약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 의회는 지난해 12월 전기소비가 많은 백열전구를 판매 금지하는 조치를 2012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해 2014년까지는 미 전역에서 백열전구 판매를 중단하는 내용을 포함한 에너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미국에서는 백열전구가 사라지고 형광등이나 발광다이오드(LED) 등 에너지효율이 높은 전구를 사용해야 한다.
새 에너지법은 또 자동차 업계의 강력한 로비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자동차 회사들이 2020년부터 새로 생산하는 차량의 연비를 ‘갤런당 35마일(L당 15km)’로 현재보다 40% 높이도록 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