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 나눠주고 헌혈하고… 2만7000여 명 구호활동 앞장
“구호품 나눠줄테니 두고가라” 군부는 되레 방해
사이클론 나르기스로 피해를 본 미얀마 국민들이 국제사회의 지원을 거부한 군사정권을 대신해 자체적인 ‘풀뿌리 구호’에 나섰다고 AFP통신이 16일 보도했다.
그동안 국제기구나 구호단체 관계자들은 미얀마 군정의 반대로 깊은 좌절감을 내비쳐 왔다. 나르기스로 10만여 명이 숨지고 250만여 명이 절박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공백을 채우기 시작한 이들이 바로 이번 재난으로 가족과 재산을 잃은 미얀마인이었다고 통신은 전했다.
▽확산되는 풀뿌리 구호 활동=국제적십자연맹(IFRC)의 브리짓 가너 씨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원봉사자 4, 5명이 매일 200여 명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수도승, 연예인, 가게 주인, 일반 주민 등이며 활동범위도 다양하다. 49세의 한 여성은 대량으로 쌀죽을 만들어 찾아오는 이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응급수혈이 필요한 여성을 위해 자전거를 활용한 자원봉사자들은 5분 만에 혈액 제공자를 찾아내기도 했다. 사이클론으로 날아간 병원의 지붕을 복구한 것도 이들이었다.
‘세이브 더 칠드런’의 카트린 라웨 씨는 “나르기스로 집과 가족을 잃었으면서도 남을 돕는 미얀마의 자원봉사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얀마 적십자사에 등록된 자원봉사자는 2만7000여 명. 그러나 생명을 구하는 것뿐 아니라 재난으로 부서진 나라의 사회간접자본 시설과 농장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훈련된 외국 전문인력이 필요하지만 미얀마 당국은 시민들의 풀뿌리 구호활동마저도 방해하고 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피해지역 초소를 지키는 군인들은 시민들의 통행을 막은 뒤 “구호물품을 대신 전달할 테니 물건만 두고 가라”고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 이익단체의 자문역을 맡은 데이비드 매치슨 씨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독립적인 모니터 체계가 없다면 구호품 배분이 왜곡되고 정실이 개입될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윤곽조차 불분명한 인명피해=군정은 15일 국영언론을 통해 나르기스로 인한 사망자 4만4318명, 실종자 2만7838명으로 전체 희생자가 7만2156명이며 이재민은 50만여 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제적십자연맹과 적신월사는 희생자가 최대 12만799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영국의 더글러스 알렉산더 국제개발담당 장관은 구호단체 등의 보고서를 인용해 20만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했다.
유엔과 적십자는 식량과 식수, 거처 등이 필요한 이재민이 160만∼250만 명에 이르며 이 중 27만 명이 구호품을 지급받고 있는 것으로 집계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개입이 체제 유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는 미얀마 군정은 여전히 해외 구호인력의 입국을 제한하고 있다. 국영 TV는 피해지역 현장보다는 군인들이 이재민에게 구호품을 전달하는 장면을 보도함으로써 재난을 체제선전용으로 악용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국제이주기구(IOM) 소속 크리스 롬 씨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재난에 대한 즉각 대응 측면에서 미얀마는 이미 기회를 잃었다”며 “이젠 긴급구호 대신 재정착 계획을 검토해야 할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허창추이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아태지역사무소장은 15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얀마 최대 곡창지대인 이라와디 삼각주를 비롯해 5개 재난지역의 논 20%가 파괴됐다”며 쌀 수출국이던 미얀마가 쌀 부족 현상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