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국내 보급 더뎌” 고지 안해… 여행객 피해
“‘핀 코드(PIN Code)’가 없으면 결제가 안 됩니다.”
“뭔 소리예요?”
간호사 변모(29·여) 씨는 지난주 초 두바이 공항의 면세점에서 신용카드로 화장품을 사려다 낭패를 겪었다. 직원이 카드를 결제단말기에 꽂은 채 핀 코드를 입력하라고 했지만 변 씨는 핀 코드가 뭔지 몰랐다.
그는 “비밀번호를 눌렀지만 결제가 안 돼 갖고 있던 현금으로 계산했다”며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으려고 했지만 역시 ‘핀 코드’를 넣으라고 나와 돈을 출금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집적회로(IC) 칩 전용 단말기가 보급되면서 신용카드에 별도로 비밀번호를 저장하지 않으면 결제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하지만 은행, 카드사들이 이런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아 소비자들이 해외에 나가 불편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 카드-신분증 들고 은행서 비밀번호 저장하면 돼
최근 국내에서 발급되는 신용카드는 대부분 카드 앞면에 정사각형 모양의 IC 칩이 내장돼 있다. IC 칩에 비밀번호를 등록하면 이 숫자가 핀 코드가 된다. IC 칩 전용 단말기에서는 핀 코드를 넣어야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일부 자동화기기(ATM/CD)는 핀 코드가 IC 칩에 저장돼 있어야 현금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미국, 동남아 등에서는 아직 IC 칩 전용 단말기가 덜 보급됐지만 유럽과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보안성이 뛰어난 IC 칩 전용 단말기 보급이 확산되고 있다.
국내에서 핀 코드를 IC칩에 저장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발급받은 카드와 신분증을 들고 카드사나 은행 지점을 찾아 비밀번호를 IC 칩에 저장하면 된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해외용 신용카드를 발급하면서도 이런 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
지난주 그리스로 휴가를 다녀온 회사원 정모(28) 씨는 “현지 호텔 요금을 결제할 수 없어 한국 카드사에 국제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더니 ‘방법이 없다’고 했다”며 “해외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일반 카드의 두 배나 되는 연회비를 내고 있는데 황당했다”고 말했다.
○ 국내선 마그네틱 결제 방식이 일반적
IC카드는 카드 내의 정보가 암호화돼 복제가 힘들다. 정보량도 200자만 저장할 수 있던 기존의 마그네틱 띠와 달리 1만6000자까지 저장할 수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금융감독 당국은 2003년경부터 IC카드 보급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는 신용카드 중 약 80%가 IC카드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 IC 칩을 읽을 수 있는 단말기는 거의 보급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아직 뒷면의 마그네틱 띠를 단말기에 긁은 뒤 사인으로 결제하는 기존 방식이 일반적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유럽에서는 마그네틱 띠 대신 IC 칩 사용이 늘고 있어 핀 코드를 등록하지 않으면 카드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며 “아직 이런 사실을 모르는 소비자가 많아 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핀(PIN) 코드
Personal Identification Number의 약자. 신용카드의 집적회로(IC) 칩(사진)에 저장된 비밀번호. 암호화돼 저장되기 때문에 기존의 마그네틱 띠와 달리 위조가 매우 힘들다. 카드 사용자가 단말기에 이 번호를 입력하면 카드에 저장된 비밀번호와 대조해 일치해야만 결제가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