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이 기른 흑인 ‘타고난 통합자’

  • 동아닷컴
  • 입력 2008년 5월 21일 20시 15분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을 꿈꾸며 미국 역사에 '뉴 챕터(New Chapter·새로운 장)를 쓰겠다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상원의원이 20일 오리건과 켄터키 주 프라이머리(예비경선)에서 선출직 대의원의 과반수를 확보했다.

본보는 20일 미국 내 저명한 외교안보대학원의 역사학자 2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오바마 현상'의 이유와 새롭게 쓰일 뉴 챕터의 모습, 그리고 대선 전망 등에 대해 들어 보았다.》

●앨런 헨릭슨


△터프스대 플레처스쿨 교수

△플레처스쿨 외교사연구소장

△하버드대 박사(외교사)

앨런 K 헨릭슨 터프스대 플레처스쿨 교수는 "오바마 후보의 등장으로 미국은 세계에 이제까지와는 '다른 얼굴'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헨릭슨 교수는 "오바마 후보가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소외된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했듯이 지구촌을 향해서도 미국을 활짝 열 지도자가 될 자질을 갖췄다"고 말했다.

―오바마 후보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그는 다른 역대 대통령과 달리 다중(多重) 문화적인 경험을 한 인물이다. 인도네시아, 케냐는 물론 미국 본토와는 성격이 다른 하와이에서 태어났다는 점도 이전 대통령들과는 다른 점이다. 일부에서는 외교안보 분야의 경험이 일천하다고 하는데 다양한 문화에 노출돼 새로운 경험을 한 것은 그만의 장점이다."

―사람들이 '뉴 챕터' 이야기를 하는데….

"그가 대통령에 당선돼 직무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조금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이미 변화는 시작됐고 오바마 후보가 뉴 챕터를 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오바마 후보 개인이 어떤 사람인가 보다는 그가 제시할 새로운 비전, 창조적인 아이디어, 이전과는 다른 이니셔티브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가 더욱 중요할 것이다."

―미국인들은 뉴 챕터를 열 준비가 돼 있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백인의 비율이 압도적인 아이오와 주 출신이다. 아이오와는 오바마 후보의 혁명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아이오와 주민들의 오바마 지지는 적어도 본선에서도 인종적인 편견이나 큰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본다. 미국인들이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혀 후보자를 선택하는 단계는 지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후보가 쓰겠다는 뉴 챕터는 어떤 모습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바마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당선 첫 날 군부 지도자들을 모두 불러 모아 이라크에서의 점진적인 미군 철군 계획을 세우도록 지시할 것이라는 점이다. 적어도 미국이 지난 8년 동안 걸어온 잘못된 방향을 되돌려 놓는 것이 뉴 챕터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새로운 외교안보정책은 어떤 양상을 보일까.

"과거 냉전시대에 미국이 상대했던 소련에 비해 지금 미국이 상정하는 적성국의 위협은 미국의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는 북한의 핵 위협도 마찬가지다. 오바마 후보가 당선되면 더 많은 자신감을 토대로 적극적인 관여(engagement)외교를 펼 것으로 기대한다."

―당선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상당히 높다고 생각한다. 프라이머리를 거치면서 보여줬던 민주당의 기록적인 투표율만 봐도 민주당 지지자들의 변화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 있다."

워싱턴=하태원특파원 triplets@donga.com

●커크 W 라슨


△조지워싱턴대 엘리엇스쿨 교수

△엘리엇스쿨 아시아연구소장

△하버드대 박사(역사학)

커크 W 라슨 조지워싱턴대 엘리엇스쿨 교수는 "오바마 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 자격을 거의 확보한 것은 미국의 역사가 직면했던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인 인종 간 갈등 해결에 희망의 빛을 비춘 일대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바마 지지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한 세대교체 차원이 아니라 미국 사회 내에서도 금기시돼 온 난제들을 공론화하고 이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내놓고자 하는 새로운 접근법에 공감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세대교체 측면에서 볼 때 오바마 돌풍의 의미는….

"포스트 베이비붐 세대를 대표하는 주자가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와는 다른 경험을 가진,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세대를 대변하는 사람이 정치에 새 바람을 넣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오바마 후보가 주목 받을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대한 불만과 경제난 때문에 변화에 대한 갈망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꿨던 라이벌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역시 새로운 변화를 대표하지는 못했다. 미국인들은 힐러리 후보를 평가할 때 자연스럽게 그 뒤에 서 있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연관지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오바마 후보가 단순히 행운아라는 뜻은 아니다. 오바마 후보는 사람들의 욕구를 가장 명확하게 대변했다."

―경험 없는 흑인 초선 상원의원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든다면….

"미국인들은 부시 행정부는 물론 클린턴 대통령 시절의 스캔들이나 부패에 대해서도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미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무능력 같은 부분에 대해 화가 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좌절감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인들은 후보가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대다수 국민이 느끼는 고통을 같이 느끼고 공감하는지 여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오바마 후보의 변화를 위한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섣불리 예견하기는 어렵지만 오바마 후보는 과거 어떤 경선보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후보다. 특히 정치적인 무관심을 보여 온 젊은층의 참여는 괄목할 만 하다. 그런 비주류의 폭넓은 정치참여를 지속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면 미국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 가능성도 있는가.

"미국 사회는 점진적으로 변화한다. 잘 느끼지 못하지만 거대한 변화의 흐름은 미국 사회의 기저에 늘 흐르고 있기 때문에 큰 변화가 일어날 때 좀 갑작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워싱턴=하태원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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