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붙잡고, 마을회관 지붕서 사투끝 구조
“쌀과 그물만 있다면 다시 마을로 돌아가고파”
가족 모두 잃고 혼자 살아 남은 사람들 넋 나가
《“턱까지 차오른 물속에서 품에 안고 있던 한 살배기 딸이 숨졌어요. 아이를 계속 안고 몸부림쳤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 결국 흐르는 물살에 떠내려 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21일 미얀마 최대도시 양곤의 사이클론 피해자 임시수용소에서 만난 노사에포(37·여) 씨는 이달 초 사이클론 나르기스로 하룻밤 사이 두 딸을 잃었던 악몽을 떠올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노사에포 씨가 살던 곳은 나르기스가 휩쓸고 간 이라와디 삼각주 지역에서도 최대 피해지역으로 꼽히는 보갈레이 지역. 그는 “양팔에 네 살과 열 살배기 딸을 안고 버티던 남편도 시간이 지나면서 힘이 빠져 네 살배기 딸을 물속으로 놓치고 말았다”고 했다. 날이 밝을 때까지 물살 속에서 대나무를 붙잡고 사투를 벌이다 세 식구만 겨우 목숨을 건졌다며 그는 몸서리를 쳤다.》
임시수용소 한쪽에서 빛바랜 사진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우웅웨이퉁(67) 씨는 나르기스로 아내와 아들, 손녀를 한꺼번에 떠나보냈다. 그는 “중풍을 앓던 아내가 갑자기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자 아들이 아내를 구하려고 물속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함께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폐허가 된 집을 다시 찾았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나무상자에 넣어둔, 비닐로 코팅된 가족사진 몇 장이 전부였다.
우루빼인(75) 씨는 아들, 딸, 손자 등 가족 7명을 잃었다. 마을을 덮친 물이 빠진 뒤 살아남은 사위와 함께 물에 잠겼던 쌀과 바닷물로 밥을 지어 간신히 생명을 이어오다 구조됐다.
임시수용소에는 출산을 앞둔 임신부도 있었다. 그는 이번 피해로 4명의 아이를 모두 잃었다고 했다. 한 여성은 등에 업고 있던 아이를 물속에 떨어뜨리고 혼자 살아난 뒤 정신을 놓고 있었다. 한꺼번에 12명의 가족을 잃은 할머니도 있었다. 살아난 사람들은 불어나는 물을 피해 나무 꼭대기나 높은 건물의 지붕에 올라가 밤새 뜬눈으로 지내다 목숨을 건진 경우가 많았다.
노에우포(26·여) 씨는 “모여 있던 마을회관에 물이 차오르자 남자들이 지붕을 뚫고 노인과 여자, 어린이를 지붕 위로 대피시켰다”고 회상했다.
이 임시수용소에는 최대 피해지역인 마오빈과 보갈레이 지역 주민 100여 명이 모여 있다. 이들은 10일 넘게 피해 현장에 고립돼 있다 지난주 미얀마 현지 구호단체에 구조돼 양곤으로 옮겨졌다. 한국에 본부가 있는 국제구호단체인 굿네이버스가 현지 구호단체와 협력해 피해자 지원과 피해지역 재건을 돕고 있다. 미얀마 현지 구호단체들은 이번 사태로 보갈레이 지역 주민 10만 명을 포함해 30만 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양곤=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현지인 구호활동가 마웅마웅씨
“피해마을 들어서자 배옆으로 시신 둥둥
처참한 상황에도 정부선 외부지원 거부”▼
“보갈레이 지역에 들어서자 시체 썩는 냄새에 코가 마비됐죠. 배 옆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시체가 떠내려갔어요. 시체로 물길이 막혀 시체를 치워야 배가 지나갈 수 있을 지경이었습니다.”
사이클론 피해 발생 직후인 6일 미얀마 이라와디 삼각주의 보갈레이 지역에 직접 들어가 시체 수습과 피해주민 구호 활동을 벌인 현지 구호단체 관계자 마웅마웅(가명·50) 씨는 21일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피해지역의 한 마을에 들어섰을 때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나무 막대기에 묶인 채 물 위에 떠 있던 시체 70여 구였다. 그는 “물이 빠지면 묻기 위해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묶어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생존자 300여 명은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비좁은 교회 건물 안에서 어깨를 마주한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마치 만원버스에 사람들이 꽉 차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생존자들이 살아나려면 식품과 의약품 등을 제때 지원해줘야 하는데 구호품을 마련할 돈이 부족하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우리가 알아서 한다’는 주장만 내세우며 외부의 지원마저 거부하고 있어 피해가 더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웅마웅 씨는 특히 22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미얀마 방문과 24일 헌법개정안 2차 국민투표를 앞두고 정부의 통제가 더욱 심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곤=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