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퇴임전 백악관 前관료들 왜 잇따라 비판 회고록 쓰나

  • 입력 2008년 5월 30일 02시 58분


뒤늦은 정의감? 두둑한 인세?

"(대통령이 퇴임도 하기 전에) 전직 백악관 관리들의 회고록으로 책장이 꽉 찰 것 같다."(미국 공영방송 NPR의 28일 논평)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심복으로 불렸던 스콧 매클렐런 전 백악관 대변인의 회고록 파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본보 29일자 A17면 참조
부시의 입, 부시를 깨물다

사실 매클렐런 전 대변인이 부시 대통령을 비판하는 회고록을 집필 중이란 건 지난해 11월부터 알려져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그럼에도 텍사스 주지사 시절부터 함께 일했으며, 2006년 4월 그의 사임을 아쉬워하며 기자들 앞에서 "훗날 텍사스로 돌아가서도 매클렐런과 나란히 앉아 백악관 시절을 회고할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느낌이리라 확신한다. 스콧! 정말 훌륭했어"라고 치하했던 그 측근에게 부시 대통령이 느끼는 배신감은 매우 깊은 것 같다.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28일 "대통령은 책의 내용이 그런 기조라는 것에 놀라고 당혹스러워했다"며 "대통령은 책의 저자가 자신이 신뢰하며 수년간 함께 일한 그 매클렐런이란 걸 인정하기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칼 로브 전 백악관 고문은 "'좌파 블로거' 같은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사실 부시 행정부에서 핵심적 위치에 있던 전직 관료들이 정권에 비수를 겨누는 글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조지 테닛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지난해 봄 회고록에서 "9·11테러를 앞두고 백악관에 경고했지만 강경파가 듣지 않았다"며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정보 판단 잘못이 백악관의 책임이라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밖에 △이라크 WMD 조사 책임자(조지프 윌슨 'The Politics of Truth'·2004년) △대테러담당 보좌관(리처드 클라크 'Against All Enemies'·2004년) △환경장관(크리스틴 휘트먼 'It's My Party, Too'·2005년)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로런스 린지 'What a President Should Know'·2008년) △이라크 재건 책임자(폴 브레머 'My Year in Iraq'·2006년) 등이 부시 대통령을 비판했다. 직접 쓴 것은 아니지만 인터뷰 형식으로 나온 폴 오닐 재무장관의 책('The Price of Loyalty'·2004년)도 부시 행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내부 고발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고, 자신이 맡았던 분야의 기록을 남기는 게 장려되는 미국에서 회고록 출간은 자연스런 일로 여겨진다.

모시던 대통령을 비판하는 회고록이 본격 등장한 것은 리처드 닉슨 시절이다. 하지만 대부분 대통령이 사임한 뒤에 나왔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엔 알렉산더 헤이그 전 국무장관, 도널드 레이건 전 재무장관 등이 대통령이 여전히 현직에 있을 때 회고록을 냈다. 특히 레이건 전 장관은 영부인 낸시 여사가 점성술에 의존한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었다.

하지만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대통령 재임 중 내부자가 회고록을 출간하는 것은 한두 건에 불과했다. 유독 부시 행정부 들어 모시던 '주군'을 비판하는 글이 쏟아지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9·11테러, 이라크전쟁 등 격동의 사건이 집중됐던 부시 행정부 1기(2001~2004년)의 '이념 과잉' 분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 세력이 득세하던 시절, 왜곡된 의사결정 구조에 좌절하거나 침묵했던 이들이 '뒤늦은 정의감'에서, 혹은 '후세의 평가에서 책임을 덜기 위해' 회고록 발간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출판업계의 경쟁과 베스트셀러 한권으로 평생의 부를 모을 수 있는 미국 출판시장의 특성도 한몫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CNN 방송은 "레이전 전 재무장관이 회고록 선인세로 받은 돈이 100만 달러였다"며 "백악관 전직 관리급의 회고록 선인세는 매우 고액"이라고 전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스콧 매클렐런의 회고록 주요 내용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침공한 진정한 동기는 중동 장악이었고,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을 과장했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며 정치적 거품 속에서 움직이는

접근 불가형(out-of-touch) 지도자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이라크 침공과 WMD 정보 왜곡 등 자신의 책임을

교묘하게 피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딕 체니 부통령은 만사를 막후에서 조종하면서도 절대로 지문을 남기지 않는

‘마술사(magic man)’다

▶부시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한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백악관을 상시 선거본부로 이용했다

▶‘리크 게이트’(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 신분 노출 사건) 때 칼 로브 백악관

정치고문 때문에 대변인으로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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