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암(舌癌)으로 미각을 잃은 주방장이 ‘요식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상에서 ‘최고의 요리사’로 뽑혔다고 9일 시카고트리뷴지가 보도했다.
주인공은 요리 경력 12년차의 그랜트 애커츠(34·사진) 씨. 2005년 그가 사장 겸 주방장으로 문을 연 시카고의 ‘알리니아(Alinea)’는 2006년 미식가들로부터 미국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뽑혔다.
2002년 이후 ‘떠오르는 젊은 요리사’로 이름을 날리던 그에게 위기가 닥친 것은 지난해 7월, 설암 4기 판정을 받으면서부터였다.
3년 전부터 혀에 하얀 반점이 나타났지만 ‘개업에 신경 쓴 나머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던 탓’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심해져 말을 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졌고, 나중에는 음식을 삼키는 것조차 힘들었다.
찾아간 병원마다 그대로 두면 목숨까지 앗아갈 것이라며 혀의 4분의 3을 잘라내는 외과수술을 권장했다. 그러나 요리사에게 혀가 없다는 것을 애커츠 씨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순간 절망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는 곧 레스토랑 직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린 뒤 방사선 치료와 화학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는 “화학 치료로 혀의 감각은 사라졌지만 음식 재료 각각에 대한 기억력은 사라지지 않았다”며 “(감각을 잃었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메뉴를 끊임없이 개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애커츠 씨가 혀의 감각의 한계를 인정하고 노력한 점 외에 오랫동안 함께 일한 동료 제프 피커스 씨와 요리를 만든 점도 맛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로 꼽았다.
8일 ‘최고의 요리사상’을 받은 직후 애커츠 씨는 “불굴의 끈기가 내 인생을 살렸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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