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가 유럽연합(EU) 개정 조약인 리스본 조약의 찬반을 묻기 위해 12일 실시한 국민투표가 부결될 것이 확실시된다.
더못 어헌 법무장관은 13일 국영 RTE 방송에 출연해 “전체적인 개표 결과를 확인해야 하겠지만 ‘반대’ 진영이 43개 선거구의 대다수에서 승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RTE는 잠정 개표 결과 43개 선거구 가운데 6곳에서만 찬성이 우세를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최종 개표 결과는 13일 저녁(한국 시간 14일 오전)에 발표될 예정이다.
EU는 리스본 조약이 발효되기 위해서는 27개 회원국 모두의 비준이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중 유일하게 국민투표를 실시한 아일랜드에서 비준이 무산됨에 따라 EU 27개 회원국이 궁극적으로 ‘EU 합중국’으로 가기 위해 준비해 온 정치통합의 기대감은 좌절되고 정치적 혼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어헌 장관은 “우리가 비준을 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가 된다면 문제가 매우 심각해질 것이다. 우리는 끝없는 심연 속에 빠져들 것”이라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인구 400만 명인 아일랜드는 EU 전체 인구(4억9000만 명)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나라는 2001년에도 리스본 조약의 전 단계인 니스 조약을 국민투표로 부결시킨 바 있어 두 번째로 EU 통합의 앞길을 방해한 셈이다.
영국 BBC 방송은 예상보다 낮은 투표율(45%)이 조약 부결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투표에 앞서 아일랜드 언론들은 반대파의 경우 이 조약이 아일랜드의 중립성과 낮은 법인세 등 세금 체제를 훼손시킬 가능성을 크게 우려해 찬성파보다 더 적극적으로 투표에 임할 것이라고 분석했었다.
한편 리스본 조약 발효로 신설될 EU 초대 대통령에 다음 달 취임할 것으로 기대해 온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야망도 한풀 꺾일 것으로 보인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긴급 대응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영국 일간 더 타임스가 보도했다.
앞으로 예상되는 움직임으로는 △조약을 부분 수정한 뒤 아일랜드에 재투표를 요구하거나 △비준 움직임을 중단하고 조약을 수정하거나 △26개국 비준으로 우선 조약을 발효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리스본 조약::
2005년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국민투표로 부결시킨 EU 헌법을 대체하기 위해 EU가 마련한 조약. EU 대통령 직과 ‘외교총책’ 직을 신설하는 등 27개 회원국으로 확대된 EU가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조항이 들어있다. 아일랜드를 제외한 26개 회원국은 의회 비준을 선택했고 프랑스 등 14개국은 이미 비준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