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알짜회사-부동산 “폭탄세일 중”

  • 입력 2008년 6월 17일 03시 04분


GE 가전부문 - 버드와이저 - 맨해튼 콘도 등

경영난에… 약달러에… 헐값 매물 속속 나와

외국인 큰손들 “지금이 기회” 무더기 사들여

“美 자존심 팔아선 안된다” 매각반대 운동도

“미국은 세일 중.”

미국의 쇼핑몰 이야기가 아니다. 외국인들이 최근 미국 회사와 자산 등을 무더기로 사들이면서 요즘 미국에선 “이러다가 미국의 중요한 회사와 자산들이 모두 외국인의 손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미국 자산 쇼핑에 나선 외국인

유에스에이투데이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올해 들어 5월까지 외국인들이 매입한 주요 미국 회사와 자산 총액은 929억 달러에 이른다. 매입 건수로만 보면 모두 531건으로 2000년 이후 같은 기간(매년 1∼5월) 중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 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이 4분의 1에 이를 만큼 외국인들이 미국 M&A 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미국인들이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알짜 자산을 무더기로 매입했다면 이제는 거꾸로 외국인들이 미국 자산을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은 최근 들어 경영 여건이 부진하자 냉장고, 세탁기 등 백색가전 부문을 떼어내 해외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과 한국 등의 매입 후보 회사들을 상대로 맹렬한 세일즈 활동을 벌이고 있다.

○ 맨해튼 스카이라인도 속속 외국인 손에 넘어갈 듯

뉴욕 맨해튼의 크라이슬러 빌딩도 중동 오일머니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중동 아부다비투자위원회(ADIC)가 크라이슬러 빌딩을 8억 달러에 매입하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ADIC는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가 지난해 설립한 국부펀드다.

ADIC의 크라이슬러 빌딩 인수 추진은 지난달 쿠웨이트가 카타르 국부펀드와 공동으로 맨해튼의 제너럴모터스(GM) 빌딩을 매입하기로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온 것이다.

해외 부자들은 최근 맨해튼의 고급 콘도(아파트)에도 눈길을 돌리고 있다. 맨해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맨해튼에서 요즘 거래되는 고급 콘도의 중요 고객은 중동과 유럽, 아시아 지역의 부자들이다.

맨해튼 콘도의 주요 고객인 ‘월가 맨’들이 최근 찬바람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맨해튼 콘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처럼 해외에서 맨해튼 콘도를 구입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미국 회사와 부동산을 잇달아 사들이는 것은 무엇보다 달러화 약세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년 전만 해도 ‘1달러=0.74유로’였지만 지금은 ‘1달러=0.65유로’에 불과하다. 유럽의 회사나 부자들에겐 미국 회사와 자산의 가격이 그만큼 싸진 셈이다. 더욱이 미국 주식시장이 약세를 보이면서 미국 기업들의 시장가격도 많이 떨어졌다.

여기에 고유가 등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오일머니가 미국 자산을 사들이는 데 가세하면서 경기가 어려워진 미국 회사들이 보유 자산의 해외 매각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 미국 맥주 살리기에 나선 미국인

“우리 맥주를 살리는 운동에 동참합시다. 버드와이저를 살리는 것은 맥주 하나를 살리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생산량 기준 세계 2위로 벨기에에 본사가 있는 맥주회사 인베브가 미국 대표 브랜드인 버드와이저를 생산하는 안호이저부시에 대한 M&A 의사를 공식화하면서 최근 미국에선 ‘버드와이저 살리기’(savebudweiser.com)라는 인터넷 사이트가 개설됐다.

이 사이트가 주도하는 버드와이저 매각 반대 청원서에는 벌써 미국인 4만 명 이상이 서명했다.

CNN방송 진행자로 미국 내 대표적인 보호무역주의자인 루 돕스 씨는 최근 들어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성조기 배지를 달고 나온다. 그는 영국의 헤지펀드가 미국의 대표적인 철도회사 CSX 매입을 추진하는 것을 “미국의 주권과 안보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라고 규정한 뒤 CSX 해외 매각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 내 알짜 회사와 자산들이 잇달아 해외에 매각되면서 이에 반발하는 역풍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CSX가 핵연료를 운반하는 등 국방부 관련 업무가 많다는 사실이 공개됨에 따라 미 의회의 일부 의원까지 CSX 매각 반대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