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물’로 정상 탈환… 팬들 “최다 패배야말로 명감독 증거”
“최다 승리보다 더 값진 기록이다.”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다 패전 기록을 세운 감독에게 야유 대신 뜨거운 갈채가 쏟아지고 있다.
18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8 대 1로 패하며 생애 통산 1454패의 ‘대기록’을 세운 주인공은 라쿠텐 이글스를 이끄는 노무라 가쓰야(野村克也·72) 감독.
아사히신문은 노무라 감독이 경기가 끝난 뒤 “불멸의 오명(汚名)을 남겼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신을 질책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프로야구 팬들 사이에서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팀의 팬 사이트 등에는 오히려 “최다 패전이라는 대기록이야말로 명감독의 증거다” “프로라고 말하기도 무색했던 꼴찌 팀 라쿠텐을 중위 팀으로 끌어올린 것은 대단한 지도력이다” “초일류 지도자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라는 등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일본의 프로야구 팬들이 이처럼 노무라 감독을 따뜻하게 감싸는 이유는 그가 최우수선수(MVP) 5번, 홈런왕 9번, 타점왕 7번, 전후 첫 3관왕을 거머쥔 ‘왕년의 대스타’라서가 아니다. 노무라 감독이 누구보다 ‘패배인생’과 ‘꼴찌’들을 열심히 격려하며 함께 부대껴 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노무라 감독은 1970년 난카이의 선수 겸 감독으로 야구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야쿠르트, 한신, 라쿠텐 등 4개 팀을 이끌어 왔다. 이들 4개 팀의 공통점은 그가 팀을 맡을 당시 모두 리그 최하위였다는 것.
그러나 노무라 감독은 이런 팀들을 일으켜 세워 기적과 같은 승리를 수도 없이 이뤄 냈다.
야쿠르트 감독으로 재임한 9년 동안에는 리그 우승 4차례, 시리즈 제패 3차례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특히 그는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는 ‘퇴물선수’들을 에이스와 기둥타자로 재기시키는 데 마술과 같은 실력을 발휘했다. 이 때문에 ‘노무라 재생공장’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
입담이 좋기로 유명한 그는 일본프로야구사에 남을 명언도 많이 남겼다. “이상한 승리는 있어도 이상한 패배는 없다”(경기에 졌을 때는 운을 탓하지 말고 자신에게서 패인을 찾으라는 뜻)도 그중 하나로 꼽힌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