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제방이 무너졌습니다. 주민 720여 명이 긴급 대피했습니다.” 요즘 미국에서 뉴스채널을 틀면 가장 자주 접하는 속보는 미시시피 강 범람이다. 지난달 들어 내린 폭우로 중부 6개 주에서 29일까지 24명이 숨지고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특히 강변 미주리 주에서 둑이 터져 마을들이 물에 잠기는 안타까운 장면을 속보로 지켜보다 보면 “여기가 ‘인프라스트럭처(사회기반시설)의 나라’로 불리던 그 미국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인프라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연상케 한 지난해 8월의 미니애폴리스 대형 교량 붕괴사고, 2005년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난 등 인프라 관리 소홀로 인한 대형 인재(人災)가 이어지고 있고 대도시 주변 도로와 주요 항구들은 만성적인 정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수도인 워싱턴 근교만 해도 고속도로 곳곳에 움푹 팬 곳들이 수개월, 수년간 방치되는 경우가 숱하다. 지난해 갈수기 때는 상수원 확보 비상이 걸린 남부 주(州)들 간에 심각한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런 위기는 ‘수요 급증+먼 안목의 부재’가 결합돼 빚어지는 것으로 지적된다.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가 인용한 미국토목공학자회 자료에 따르면 2020년이 되면 미국 내 화물운송량은 1998년보다 70%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인구는 2050년에 4억2000만 명으로 2000년보다 50% 증가하고 그 상당수가 대도시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인프라 투자비율은 2.4%로 유럽의 5%, 중국의 9%에 비해 턱없이 적다.
로이터통신이 지난주 소개한 미 정부 자료에 따르면 매년 교통 인프라를 위해 1300억 달러의 재원이 필요하지만 실제 투자액은 500억 달러에 그치고 있다.
21세기의 핵심 인프라인 정보통신망에서도 미국은 선두그룹에서 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조너선 애덜스타인 위원은 지난달 29일 공영방송 NPR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2001년 초고속통신망 구축에서 세계 4위였지만 지금은 캐나다 벨기에 영국 같은 나라들에 뒤처져 15위로 떨어졌다”며 “특히 농촌지역에서 초고속통신망 접근이 가능한 주민들은 39%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손 큰’ 인프라 투자의 전통으로 유명했다.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1808년 한 세기를 내다본 도로·운하 비전을 내놓았고 이것이 대륙횡단철도 건설로 이어졌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주도한 1956년의 연방 고속도로 지원 법안은 대륙을 거미줄처럼 잇는 주간(interstate) 연결 고속도로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근래 들어선 ‘민간자본 유치+이용료 징수+지방자치단체의 재원 분담’을 주장하는 연방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 간의 힘겨루기로 인프라 투자가 지연되기 일쑤다.
인프라 재건은 대통령선거전에서도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지난주 피츠버그 연설에서 “인프라 재건을 위해 세대에 걸친 헌신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며 도로 건설, 교량 보수, 고속철도 건설 재원 마련을 위한 600억 달러 규모의 펀드 창설을 제안했다.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인프라 재건에 쓰여야 할 예산이 정치인들의 지역구 챙기기 선심사업으로 유용되는 ‘포크 배럴(pork-barrel)’ 현상을 근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