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국제유가 상승을 틈타 잇달아 에너지 가격 인상 전망을 내놓으며 주변국과 에너지 도입 국가를 압박하는 ‘오일정치’를 하고 있다.
러시아 최대 국영회사 가스프롬은 3일 “석유 값이 배럴당 250달러에 이르면 천연가스 가격도 1000m³당 1000달러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이타르타스통신이 전했다.
러시아 천연가스는 유럽에서 1000m³당 300달러 안팎에 팔리고 있다. 이 같은 가스프롬의 전망은 러시아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유럽 국가들에 ‘지금의 3배 이상도 각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러시아와 장기 계약에 응하지 않는 유럽 국가를 압박하는 메시지”라고 풀이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 인상을 이용한 ‘오일정치’ 계획은 지난달 10일 프랑스를 방문한 알렉세이 밀러 가스프롬 사장의 발언에서 이미 드러났다. 밀러 사장은 “유가는 투기가 아닌 자원 확보 경쟁 때문에 오른다”며 “석유 값이 내년에는 배럴당 250달러에 이르고 가스 가격도 유가에 연동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해 중앙아시아에서 천연가스를 직수입하길 원하지만 이는 오히려 가스 가격을 높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의 경고는 대체 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한 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협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아가 에너지 가격을 대외관계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는 게 모스크바 외교가의 관측이다.
독일 영국 등은 이미 선물 거래를 통해 수입 물량을 확보하느라 치열한 물밑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천연가스는 비축하는 데 한계가 많아 가스저장소 용량 이상은 구입할 수 없다. 러시아는 이런 조건에서 목소리를 한껏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탓에 주변국들은 러시아의 ‘오일정치’ 입김을 피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러시아가 시베리아에서 보내는 석유 가격을 대폭 높이겠다고 발표하자 중국은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는 가스 대체연료로 석탄 채굴을 대폭 늘리고 있다. 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은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와 아프리카를 통한 에너지 도입 루트를 뚫고 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