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14일 ‘유색인종 지위 향상을 위한 전미협회(NAACP)’ 연차총회에서 흑인 가장의 책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당연하고 평범한 내용 같지만 사실 이 발언은 상당한 용기와 결단이 없으면 하기 힘든 것이란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미국 진보진영, 특히 흑인 인권운동가들 사이에서 ‘개인의 책임감’이란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말이다. 소외와 불평등을 구조적 차별과 모순의 문제로 다루지 않고 ‘개인의 불성실’ 차원으로 희석시킬 수 있다는 시각이 팽배하기 때문.
그런 분위기에서 오바마 후보가 거듭 ‘책임’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낡은 진보’와 결별하고 ‘균형 잡힌 새로운 진보의 패러다임’을 지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분석된다.
사실 지난달 ‘아버지의 날’에 오바마 후보가 흑인 가정의 현실과 관련해 “가정에서 아버지의 부재(不在)”를 지적하면서 아버지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했을 때 진보진영은 고운 시각을 나타내지 않았다.
“오바마의 ××을 까 버리겠다”(‘거세해 버리겠다’는 뜻의 비속어)는 제시 잭슨 목사의 망언도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오바마 후보를 아끼는 사람들조차 “순수한 뜻은 알겠지만 지지층의 결집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걱정을 나타냈다.
실제로 최근 오바마 후보의 지지도는 특별한 원인 없이 하락세를 보여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와 동률이거나 오차범위 내로 들어섰다. 정치 분석가들은 이를 ‘중도 행보로 인해 핵심 지지층이 반발하는 현상’으로 풀이하고 있다.
동시에 다른 쪽 극단에선 그를 이슬람교도로 모는 흑색선전과 루머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시사 주간지 뉴요커는 이슬람 복장을 한 오바마 후보가 전투화를 신고 총을 둘러멘 부인 미셸 씨와 주먹을 맞부딪치는 삽화를 표지에 실었다. “잡지를 팔아먹기 위한 센세이셔널리즘의 극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결국 이런 선정적 보도로 피해를 보는 것은 오바마 후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후보가 눈앞의 정치적 불이익에 대한 계산에 얽매이지 않는 ‘외로운 행군’을 계속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나는 (흑인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정부가 할 일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 싸울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자한다 해도 우리가 삶에 대해 더 많은 책임감을 갖지 않는다면 충분한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개인의 책임과 사회의 책임 모두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고 자녀가 숙제 하는 걸 도와주십시오. 부모님이 자녀의 본보기가 되어 주십시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